항목 ID | GC0500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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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
집필자 | 장필기 |
입향지 | 광산 김씨 입향지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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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광산 김씨 집성지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
세거|집성지 | 광산 김씨 집성지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
성씨 시조 | 김흥광(金興光) |
[정의]
김흥광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포천시의 세거 성씨.
[개설]
광산 김씨(光山金氏)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신무왕의 셋째 아들이다. 김흥광은 고려가 삼한을 통일하자 신라의 비운을 미리 알고 경주를 떠나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서일동에 은거함으로써 광산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 고려 태조가 김흥광을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하였으며,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광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연원]
시조 김흥광이 서일동에 터를 잡은 이후 고려조에 후손들 가운데 8명의 평장사(平章事)가 배출되자 사람들이 그곳을 평장동이라 불렀다. 고려 초기부터 명문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 광산 김씨는 11세 김위(金位)와 김주영(金珠永) 형제 대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12세 김광세(金光世)와 김광존(金光存)의 양대 산맥으로 분파되었다.
[입향 경위]
450여 년 전 포천시 내촌면 내리에, 360여 년 전에는 창수면 추동리에 정착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다.
[현황]
1934년 통계에는 포천군 창수면 추동리에 22가구가 거주하였으나, 1953년 통계에는 창수면 추동리에 23가구, 내촌면 내리에 19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인구 통계에 따르면 총 2,095명이 포천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