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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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縉 |
이칭/별칭 | 운경(雲卿),수은(睡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준호 |
출생 시기/일시 | 1572년 - 권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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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9년 - 권진 경주 부윤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16년 - 권진 수원 부사·함경도 관찰사·한성 판윤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21년 - 권진 상락군에 봉해짐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권진 병조 판서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권진 양산에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624년 2월 18일 - 권진 사망 |
출생지 | 권진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소흘면 고모리 |
묘소|단소 | 권진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안동(安東) |
대표 관직 | 병조 판서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운경(雲卿), 호는 수은(睡隱). 찬성사 권근(權近)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금산 군수 권종(權悰)이다. 아버지는 공릉 참봉을 역임한 권현(權晛)이며, 어머니는 의금부도사 이희삼(李希參)의 딸이다.
[활동 사항]
권진(權縉)[1572~1624]은 1597년(선조 30)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과 수찬, 형조 정랑, 장령, 교리, 사간, 대동도 찰방을 거쳐, 1609년(광해군 1) 경주 부윤으로 승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승지로서 계축옥사에 연루된 인목 대비 동생이며 김제남(金悌男)의 아들인 김선(金瑄)의 감형을 청하였다. 1616년(광해군 8) 수원 부사가 되고, 이어 함경도 관찰사와 한성 판윤을 역임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지고, 좌참찬을 거쳐 1623년(광해군 15) 병조판서가 되었는데,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하지 않아 수차 탄핵을 받았다.
인조반정이 일어나 대신 고관이 모두 도망쳤을 때 김유(金瑬)·홍서봉(洪瑞鳳) 등의 추천을 받고 홀로 제위(諸衛)의 군사를 모아 궁궐을 호위하여 공을 세웠으나, 그의 유능함을 질시한 반정 공신들로부터 계축옥사 때 형방승지로 김제남을 모욕 주었다는 무고를 받고 양산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공신들의 사주를 받은 경상도 관찰사 민성휘(閔聖徽)에 의해 왜인과 내통하여 반란을 꾀하였다는 죄목으로 1624년 2월 18일 참형을 당하였다. 그 해 4월 13일 고향의 선산으로 반장(返葬)되었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