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994 |
---|---|
한자 | 徐命九 |
이칭/별칭 | 우경(虞卿),약허(若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의환 |
출생 시기/일시 | 1692년 - 서명구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754년 10월 22일 - 서명구 사망 |
출생지 | 서명구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
부임|활동지 | 개성 유수 -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
부임|활동지 | 경기도 관찰사 - 경기도 수원시 |
부임|활동지 | 전라도 관찰사 - 전라북도 전주시 |
묘소|단소 | 서명구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대구(大丘) |
대표 관직 | 대사헌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우경(虞卿), 호는 약허(若虚). 증조할아버지는 서형리(徐亨履)이고, 할아버지는 서문도(徐文道)이다. 아버지는 선공감 감역을 지낸 서종신(徐宗愼)이다. 어머니는 김회영(金會英)의 딸이다. 아들은 서효수(徐孝修)이다.
[활동 사항]
서명구(徐命九)[1692~1745]는 1717년(숙종 43)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1722년(경종 2) 소론의 과격파 김일경(金一鏡)과 목호룡(睦虎龍) 등이 왕세제 연잉군[영조]를 제거하려 하자 이들을 탄핵하여 음모를 막았다. 이후 영조가 즉위한 뒤 강원도 도사가 되었고, 이어서 필선(弼善)·보덕(輔德)·집의·헌납 등을 지냈다. 1731년(영조 7) 이후 사간과 부응교 및 승지를 거쳐 1741년(영조 17) 개성 유수가 되었다.
1742년(영조 18) 사은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한성부 좌윤에 이어 대사헌과 경기도 관찰사 및 공조참판을 지냈다. 1752년(영조 28) 전라도 관찰사가 되어 과중한 조세 부담을 삭감해 주었고, 지방관들의 부정을 엄단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영조가 죽자 거듭 왕계(王系)의 정통을 지키는 등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알려졌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