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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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智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우 |
출생 시기/일시 | 1498년 - 유지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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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77년 - 유지선 사망 |
출생지 | 유지선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
묘소|단소 | 유지선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삼성당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문화(文化) |
대표 관직 | 대사간 |
[정의]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명중(明仲). 아버지는 진사 유연(柳演)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효우 정려 문을 받은 유인선(柳仁善)의 동생이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전(柳㙉)[유예선의 아들]의 숙부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효행으로 정표를 받은 유홍서(柳弘緖)의 양할아버지이다. 5형제 중 넷째로, 형 유인선(柳仁善), 유은선(柳恩善), 유예선(柳禮善), 유정선(柳貞善)과 한 집에 살면서 돈독한 우애를 자랑하였다. 부인은 경주 김씨(慶州金氏)이다.
[활동 사항]
유지선(柳智善)[1498~1577]은 포천현 서쪽 자작촌[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에서 태어나 생활하였다. 1522년(중종 17) 생원이 된 뒤 1531년(중종 2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사헌부 감찰, 호조좌랑, 병조정랑, 사헌부 지평을 지냈으며, 1539년(중종 34)과 1574년(선조 7) 두 차례에 걸쳐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대사간, 동부승지, 강원도 관찰사, 형조참판, 경상도 관찰사, 개성 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
묘는 원래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었으나 2004년 8월 현 위치인 신북면 삼성당리 선영으로 옮겼으며, 부인 경주 김씨와 합장분이다.
[상훈과 추모]
형제간의 우애가 깊어 1549년(명종 4) 효우정려문(孝友旌閭門)이 내려졌지만 소실되었고, 효우정이 있던 터도 현재는 논으로 변하였다. 유인선의 6세손 유세주(柳世冑)가 1735년(영조 11)에 세운 유인선 효우비[포천시 향토 유적 제4호]에는 유지선을 가리켜 “옥 같은 얼굴에 산처럼 꿋꿋하였고, 굳은 지조로 자신을 지켰으며,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로 있다.”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