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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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士慶 |
이칭/별칭 | 이선(而善)/쌍곡(雙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병무 |
출생 시기/일시 | 1569년 - 이사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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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21년 - 이사경 사망 |
묘소|단소 | 이사경 묘소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용인(龍仁) |
대표 관직 | 대사간 |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이선(而善), 호는 쌍곡(雙谷). 증조할아버지는 이즙(李湒)이고, 할아버지는 공조정랑 이신충(李藎忠)이다. 아버지는 생원 이계인(李啓仁)이고, 어머니는 이극강(李克綱)의 딸이다. 부인은 성희익(成希益)의 딸이며, 아들은 이후천(李後天)이다.
[활동 사항]
이사경(李士慶)[1569~1621]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다. 1590년(선조 23) 증광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1년(선조 34)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성균관 전적·사간원 정언·병조좌랑을 거쳐 1605년(선조 38) 삼화 현령에 제수되었다. 1606년(선조 39) 예조좌랑을 거쳐 사간원 정언·사헌부 지평이 되고, 1613년(광해군 5) 성천 부사로 재임 중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란하였던 관사 강선루(降仙樓)의 화재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1614년(광해군 6) 다시 승지로 복귀한 후 줄곧 승정원에서 국왕을 보필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 대사간으로 승진하였다. 당시 인목 대비(仁穆大妃)는 존호를 삭제 당하고 경운궁에 유폐되어 있었는데, 경상도 관찰사 윤훤(尹喧)과 충청도 관찰사 이춘원(李春元)이 올린 상소에서 인목 대비에 대한 존칭을 그대로 쓴 것을 묵인하여 준 것이 문제가 되자 사직하고 물러났다. 1620년(광해군 12) 다시 우승지로 복귀하였고, 이후 좌부승지, 병조참의, 예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