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70 |
---|---|
한자 | 趙威明 |
이칭/별칭 | 회여(晦汝), 송천(松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회여(晦汝), 호는 송천(松泉). 우의정 조연(趙涓)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구(趙緱)이다. 조경(趙絅)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조위명(趙威明)[1640~1685]은 7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작은아버지 조경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음보로 세자익위사 부수(世子翊衛司副率)가 되었다가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거쳐 사간원 정언·사헌부 지평·홍문관 응교를 지냈다. 이때 대신들이 붕당의 세력을 업고 뜻을 달리하는 사람을 모함하여 파직시키는 일이 빈번하자 이를 반박하다가 탄핵을 당하여 전라도 도사를 거쳐 북청 판관이 되었다.
1674년(숙종 즉위년) 숙종이 즉위하자 성균관 직강이 되어 현종의 시책(諡册)을 썼으며, 동부승지·우부승지를 거쳐 충청도 관찰사로 나아가 선정을 베풀었다. 1676년(숙종 2) 태조의 부례(紨禮)를 행할 때 옥책(玉册)을 써 그 공로로 가자되었다. 그 후 호조·예조·병조·공조 등 5조의 참판을 역임하고 대사간(大司諫)이 되었으며, 1677년(숙종 3) 승정원 도승지가 되었다.
[학문과 저술]
문예에 뛰어났고 필법이 절묘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명문장가로서 예론에 밝았으며, 유필(遺筆)로 허목(許穆)이 찬한 동창위(東昌尉) 권대항(權大恒)의 비문과 양주의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목서흠(睦敍欽)의 비문, 대군사부(大君師傅) 권적(權蹟)의 표(表), 포천의 조익남(趙翼男) 비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