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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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泰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호 |
불망비 | 현감 홍공 태윤 영세 불망비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산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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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비 | 홍태윤 불망비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남양(南陽) |
대표 관직 | 포천 현감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현감을 지낸 문신.
[개설]
홍태윤은 중인 출신이었으나 사람 됨됨이가 워낙 훌륭해서 고을의 수령을 거쳐 현관(顯官)의 벼슬길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출세한 후에도 지극히 겸허(兼虛)하여 현감의 위의(威儀)를 갖추어 행차를 하다가도 마을 어른이나 친족, 친구들을 만나면 수레에서 내려 깍듯이 수인사(修人事)[일상의 예절]를 나누었다고 한다.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대한제국군의 강제 해산에 반발하여 순국 자결로 무장 투쟁에 불을 지핀 박승환(朴昇煥)[1869~1907]의 외삼촌이다. 홍태윤(洪泰潤)이 박승환에게 한학과 궁술, 총술 등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활동 사항]
홍태윤은 경기도 양주 출생으로, 신체가 장대하고 도량이 넓어 대장부다운 기백을 갖추었다. 궁궐을 지키는 관속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명성 황후(明聖皇后)가 임오군란을 당해 위급하게 되자 주변에 동생이라고 속이고는 왕후를 업고 경기도 여주까지 피신시켜 화를 면하게 하였다. 그 후 발탁이 되어 영평 현령을 거쳐 포천 현감으로 있다가 양주 목사까지 역임하였는데, 명관(名官), 명판관(名判官)으로 이름이 높았다.
포천 현감으로 있을 때 민정을 살피러 허름하게 차리고 냇가로 나갔는데 한 촌로(村老)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홍태윤이 무슨 근심이 있느냐고 묻자 “당신은 알 것 없소.” 하고 말을 끊었다. 무슨 곡절이 있는 것 같아 곁에 앉아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 보니 촌로가 말문을 열었다. 얼마 전에 기르던 소를 관놈[관가에 소속된 사람]이 외상으로 가져갔는데, 소를 잡아 팔았으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소 값을 주지 않아 속이 상해서 이렇게 앉아 있노라고 하였다.
이에 홍태윤이 “관가에 가서 소 값을 받아 달라고 하면 되지 왜 혼자서 끙끙대고 있느냐?”고 하자 촌로가 “초록은 동색이지, 그놈도 관놈 자식인데 관놈 편을 들지 내 편을 들어주겠소.” 하였다. 그래도 홍태윤은 관가에 가서 호소해 보라고 강력히 권고하여 촌로로부터 다음 날 관가에 가겠노라 확답을 받기에 이르렀다. 다음 날 촌로가 현감을 찾아가서 소 값을 받고 보니, 바로 어제 만났던 그 사람이 현감임을 알고 몸 둘 바를 몰랐다는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은 포천 선비 한 명이 ‘포천은 반향(班鄕)[양반의 고장]인데 관속 출신 홍태윤이 현감이라니…….’ 하고는 현감을 찾아가서는, “어제 뒷산에 가서 매[鷹] 사냥을 하다가 매를 잃어버렸으니 찾아 주시오.” 하고 비아냥거리며 호소하였다. 그러자 홍태윤은 태연하게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고 전한다.
득어청산(得於靑山)[청산에서 얻어]
실어청산(失於靑山)[청산에서 잃었으니]
문어청산(問於靑山)[청산에 물어 보아라]
청산불청(靑山不聽)[청산이 듣지 않거든]
조어청산(措於靑山)[청산을 잡아 오라]
홍태윤의 기품에 눌려 선비는 슬며시 사라지고, 그 후로부터는 고을 사람들이 순종하고 현감은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부임하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지방의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는데,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산2-4번지에 현감 홍공 태윤 영세 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양주에도 양주 군수 홍태윤 불망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