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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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錫命 |
이칭/별칭 | 여삼(汝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채용 |
출생 시기/일시 | 1642년 - 김석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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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0년 - 김석명 천거로 선전관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717년 - 김석명 사망 |
출생지 | 김석명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 |
묘소|단소 | 김석명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안산(安山) |
대표 관직 | 호서 병마절도사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여삼(汝三). 고려 시중 김위(金渭)의 후손으로 김정경(金定卿)의 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좌승지에 추증된 김찬(金讚)이고, 아버지는 호조 참판에 추증된 김성대(金聲大)이다. 영조 연간 지중추부사를 지낸 김상두(金相斗)의 백부(伯父)이다.
[활동 사항]
김석명(金錫命)[1642~1717]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670년(현종 11) 천거로 선전관이 되었다. 1674년(현종 15) 도총부의 도사와 경력을 지냈고 이어 강동 현감이 되었다. 1679년(숙종 5) 무과 중시의 시관(試官)이 되었고, 이듬해 순천 군수가 되었으며, 품계가 올라 창주 진관 첨절제사(昌州鎭管僉節制使)가 되었다. 1685년(숙종 11) 용천 부사가 되었다. 1693년(숙종 19) 오위장과 이천 부사가 되었으며, 1695년(숙종 21) 아버지의 상을 당해 사직하였다가 탈상 후 죽산 부사에 임명되었다. 1700년(숙종 26) 가선대부에 가자되고, 1704년(숙종 30) 호서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08년(숙종 34) 부총관이 되었으나 이후 병환으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향년 76세로 졸하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백운산 아래 선영에 있다. 묘비명은 유척기(兪拓基)가 짓고 홍종운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