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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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병무 |
출생 시기/일시 | 1430년 - 신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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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53년 - 신주 무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526년 - 신주 사망 |
묘소|단소 | 신주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영산(靈山) |
대표 관직 | 병조 참판 |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무신.
[가계]
본관은 영산(靈山).
[활동 사항]
신주(辛鑄)[1430~1526]는 1453년(단종 1) 무과에 급제하고, 1457년(세조 3) 중시(重試)에 합격하였다. 1460년(세조 6) 원종공신 3등에 책봉되었고, 이후 전라도 절도사, 함길도 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함길도 절도사로 있을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 참여하였다. 1472년(성종 3년)부터 1478년(성종 9)까지 평안도 병마절도사, 경상 좌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고, 특히 국경 지대의 경비와 대책을 세우는 등 공이 많았다.
1479년(성종 10) 형조 참판과 영안북도 절도사를 지냈다. 영안북도 절도사로 재직할 때 영안남도 절도사 이흠석(李欽石), 영안도 관찰사 이덕양(李德良)과 함께 차역(差役)을 피해 삼봉도(三峯島)[지금의 독도]에 몰래 숨어든 수천 명의 인민을 토벌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후 병조참판, 강원도 관찰사, 훈련원 도정, 동지중추부사, 개성부 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해룡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