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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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壽昌 |
이칭/별칭 | 대로(大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명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병무 |
출생 시기/일시 | 1614년 - 이수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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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44년 - 이수창 정시 병과 35위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65년 - 이수창 사망 |
묘소|단소 | 이수창 묘소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명산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고성(固城) |
대표 관직 | 수원 부사 |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무신.
[가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대로(大老). 아버지는 영춘 현감 이중국(李重國)이다.
[활동 사항]
이수창(李壽昌)[1614~1665]은 1644년(인조 22) 정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서 1648년(인조 26) 덕산 현감으로 나아갔다가 충청·전라 양도의 암행어사인 심택(沈澤)에게 탄핵을 받았다. 당시 이수창이 부인의 혼수를 과도하게 많이 장만하여 상경하였고, 또한 함부로 소를 잡고 세금을 무리하게 많이 거두었다는 이유로 적발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수창은 추문(推問)을 당하고 고신(告身)[직첩]을 빼앗겼다.
1649년(인조 27) 비변사에서 우수한 유장(儒將) 일곱 명과 무신 열 명을 지위에 관계없이 뽑았는데, 이때 이수창이 무신 열 명 가운데에 들었다. 1652년(효종 3) 우금군 별장이 되어 금중(禁中)에 입직할 때 마침 효종이 순시하다 불러 놓고 “금군(禁軍)들의 노고가 어떠하냐?” 하고 물은즉 이수창이 나아가 대답하기를, “군사들 모두가 기뻐하고 스스로 말을 장만한 자가 이미 200여 명이나 됩니다.”라고 하니 임금이 기뻐하였다. 이듬해 충청 수사에 임명되어 나아갔다가 1654년(효종 5) 충청 병사로 자리를 옮겼다. 1660년(현종 원년) 충청 병사에서 훈련 중군, 경상 우병사 등의 관직을 거쳐 1664년(현종 5) 수원 부사가 되었으나 다음해 병으로 사망하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명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