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11 |
---|---|
한자 | 柳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우 |
출생 시기/일시 | 1388년 - 유종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445년 - 유종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505년 - 유종 좌참찬에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987년 - 유종 신도비 건립 |
거주|이주지 | 유종 이주지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
묘소|단소 | 유종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계류 2리 |
신도비 | 유종 신도비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계류 2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문화(文化) |
대표 관직|경력 | 한성부 판관 |
[정의]
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할아버지는 조선 개국 공신 유만수(柳曼殊)이며, 아버지는 중추원 부사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추증된 유원지(柳原之)이다. 아들 다섯 명을 두었다.
[활동 사항]
유종(柳淙)[1388~1445]은 1398년에 벌어진 제1차 왕자의 난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방원(李芳遠) 세력에게 죽음을 당하자 포천현 서쪽 자작리[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1423년(세종 5) 유만수의 억울함이 풀어지면서 그의 자손을 등용하라는 명에 따라 한성부 판관과 영유 현령을 지냈다. 재주와 행실을 두루 갖추었다고 전한다. 유종 일족이 정착한 후 자작리는 ‘문화 유씨촌’으로 불렸는데, 문화 유씨가 스스로 만든 마을이라 하여 후에 자작리(自作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묘소]
『견성지(堅城誌)』에는 유종의 묘가 포천현에서 북쪽으로 20리[8㎞] 떨어진 왕방산 아래 계류촌 제동(堤洞)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계류 2리 방축골[방축동] 뒤 산자락이다. 봉분은 부인 계림 이씨(鷄林李氏)와 합장 형태이다.
[상훈과 추모]
1505년(중종 1) 손자인 유순(柳洵)이 영의정에 올라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되자 유종에게 숭정대부 의정부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1987년 2월 계류 2리 방축골 마을 어귀에 유종 신도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