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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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至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진호 |
출생 시기/일시 | 1528년 - 홍지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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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7년 - 홍지성 사망 |
출생지 | 홍지성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
묘소|단소 | 홍지성 묘소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남양(南陽) |
[정의]
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강중(剛中), 호는 불정산인(佛頂山人). 아버지는 홍유손(洪𥙿孫)이다.
[활동 사항]
홍지성(洪至誠)[1528~1597]은 천성이 고결하고 아담하며, 사람됨이 고아(高雅)하고 검솔(儉率)하였다. 몸가짐과 접물(接物)하는 태도가 세상 사람들과 자못 비슷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그를 특이하다고 비웃는 자가 많았다. 이항복(李恒福)을 사우(師友)로 대하였다. 아버지가 무오사화로 고초를 겪었기에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서적(書籍)에 대해서는 읽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후진(後進)들을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 한밤중이 되어 배우는 자들은 졸음에 겨워 머리를 꾸벅거리는데도 홍지성은 처음처럼 꼿꼿이 단정하게 앉아 있으면서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무릇 옛글 중에 내용이 이리저리 얽히어 가장 중요하며 평소에 난해(難解)한 곳으로 알려진 곳들을 털과 실올을 가르듯이 분명하게 분석하고 의심스러운 점을 남겨 두지 않았다. 고문(古文)에 특히 정통하였다고 한다.
1591년(선조 24) 예조에서 그 학문과 재능으로 벼슬을 청하였으나 사양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공주 무성산(武城山)으로 피난하였다가 왜병의 해를 입어 죽었는데, 그때 나이가 70여 세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불정산 아래에 있다.
[상훈과 추모]
권필이 유사(遺事)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