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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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春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호 |
[정의]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왕방산인(王訪山人).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홍순성(洪順成)이다.
[활동 사항]
홍춘수(洪春壽)는 경기도 포천시에서 출생하였다. 1564년(명종 19) 갑자(甲子) 식년시 을과(乙科) 3위로 급제하여 충순위에 임명되었다. 얼마 후 벼슬을 멀리하고 지금의 포천시 선단동에 은거하며 후세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으며, 왕방산 기슭인 선단리에서 산다고 하여 자신의 호를 ‘왕방산인’이라고 지었다.
홍춘수는 학문이 넓고 깊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인(異人) 소리를 들을 만큼 벼슬을 철저히 사양하고 살았다. 일생을 후학들을 교육하는 데만 전념했는데, 인재를 골라 교육함으로써 문하에 유명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당시 시문(詩文), 의학(醫學), 서예(書藝)에 이름이 높던 정착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토론하였다. 당대의 성리학자이며 청백리로 명성이 높던 조경(趙絅)이 『포천 읍지』를 편찬하고자 할 때, 사람들이 모두 “홍춘수 선생은 당연히 인물록(人物錄)에 기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왕방산 기슭 선단동에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던 유지(遺址)가 남아 있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왕방산 기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