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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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觀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조선 후기 포천에 살았던 효자.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국빈(國賓). 고조할아버지는 종실(宗室)의 의성군(義城君)이다.
[활동 사항]
이관하(李觀夏)는 포천시 가산면 화산리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품행이 방정하여 가난한 살림에도 부모 봉양에 지극정성이었다. 아버지가 오랜 기간 병을 앓았는데, 음식을 손수 받들어 드시게 하고 약도 먼저 맛을 본 후에 드렸다. 밖에서 맛난 음식을 대하면 먹지 않고 집으로 가지고 와 부모님께 드렸다. 십 수 년간 아버지가 병석에서 신음하여도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온화한 모습으로 조석을 거르지 않고 받들었다. 또 명약(名藥)을 구해도 먼저 맛본 후 드렸으며, 복용 후에는 증세를 꼭 챙겼다.
하루는 매끼 드시던 고기반찬을 장만하지 못하여 형제가 모여 앉아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기에 이르렀는데, 하늘도 무심치 않았는지 꿩 한 마리가 앞마당에 날아 들어와 떨어졌고, 떨어진 꿩을 잡아 찌고 볶고 삶는 등 다양하게 음식을 만들어 부모님을 공양하였다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듣고 천지신명이 감응하신 것이라 하여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밤중에 목욕재계하고 북두칠성에 기도하였으나 상을 당하였고, 이에 조석으로 묘 앞에서 통곡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관하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1716년(숙종42)에 정려를 세우게 하고, 급복(給復)[충신이나 효자에게 부역을 면제하여 주는 것]을 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