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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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妻安東金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진호 |
추모 시기/일시 | 1476년 - 홍의달 처 안동 김씨 절부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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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홍의달 처 안동 김씨 묘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
비 | 홍의달 처 안동 김씨 절부비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안동 |
[정의]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열녀.
[가계]
본관은 안동. 아버지는 동추공 김종숙이며, 남편은 세조 때 목사와 성균관 사성 등을 역임한 홍의달(洪義達)이다. 남동생은 문정공 김질이다. 김질은 단종 복위 거사를 함께 논의하다 거사가 연기되자 장인 정창손에게 고하여, 사육신은 물론 상왕으로 물러나있던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로 유배 보낸 장본인이다. 김질은 그 공으로 좌익공신에 책록되어 좌의정까지 올라 부귀영화를 누렸다.
[활동 사항]
홍의달 처 안동 김씨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현숙하게 자랐다. 홍의달에게 출가한 이후 헌신적인 부도(婦道)로 홍씨 가문을 이끌었으며 남편과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자식 없이 남편이 일찍 돌아가자 포천군 내촌면 음현리에 장사지내고, 한 여종을 데리고 항상 남편 묘를 돌보면서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였다. 그때마다 무릎을 꿇고 곡을 하여 결국 무릎이 썩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하였다.
하루는 큰 호랑이가 나타나 여종이 몹시 두려운 빛으로 이 사실을 알리자, 김씨는 죽는 것이 소원인데 무엇이 두렵겠느냐면서 오히려 태연하였다고 한다. 그 후 호랑이는 매일 찾아와서 곡이 끝난 다음 새벽에야 돌아가곤 하다가, 묘곡 3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집 근처까지 따라왔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묘소]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나라에서 열녀 정문을 내렸다. 1476년(성종 9) 9월에 교(敎)를 받들어 ‘상화 12년 9월 14일 봉교 고행 성균관 사성 홍의달 처 절부 안동 김씨 정석(成化十二年九月 十四日奉敎苦行成均館司成洪義達妻節婦安東金氏旌石)’이라 새겨 절부비를 세웠다. 비석은 포천시 내촌면 내리에 있는 아버지의 묘 아래 길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