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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167
한자 李壬才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병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2년 - 이임재 출생
성격 효부
성별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부.

[활동 사항]

이임재(李壬才)는 소홀산 아래에서 미모의 소녀로 성장하여 사노(私奴) 장귀일(張貴日)과 혼인하였다. 나이 27세 때인 1698년(숙종 24)에 괴질로 시아버지와 남편이 모두 사망하였다. 여자의 몸으로 힘든 장례 준비를 열심히 하였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통곡하며 예를 다하자 이웃 사람들이 감동하여 도와주었다. 이후에도 홀로된 시어머니를 섬기는 데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건달 홀아비들이 많이 탐내어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고, 그럴 때면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가신 남편이 나를 믿고 시어머니를 섬기게 하였는데 어떻게 배신합니까? 시어머니 생전에는 맹세코 개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또 서울에 사는 부자인 김 아무개란 사람이 이임재가 무척 예쁘다는 말을 듣고 상당한 돈을 가지고 와서 슬며시 사서 강제로 서울로 데리고 가 재물로 유인하였으나, 울면서 애걸하므로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 후에 다시 남편의 주인이었던 이 아무개라는 사람이 재물로 유혹하였으나 정색하며, “만약에 시집을 가게 된다면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야 갈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라고 간절히 말하였다.

이임재는 집이 가난하여 어린 자식을 데리고 품팔이를 하면서도 온 정성으로 시어머니를 섬겼다. 30년이 지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장사를 지내고 통곡하면서 정성을 다하였다. 이임재는 시어머니가 사망한 지 3년 후에 죽었다. 생전에도 효부와 열녀를 겸하였다 하여 많은 선비들이 건의하자, 나라에서 가족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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