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8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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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甲午日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흥모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55년 - 「갑오일기」 저자 이남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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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07년 - 「갑오일기」 저자 이남규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73년 - 「갑오일기」 『수당집』 발간 |
배경 지역 | 축석령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 |
배경 지역 | 금수정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546 |
성격 | 일기 |
작가 | 이남규 |
[정의]
1894년 이남규가 포천을 거쳐 영흥 부사로 부임하는 노정과 영흥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일기.
[개설]
「갑오일기(甲午日記)」는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가 1894년[甲午年] 음력 5월 6일부터 12월 말일까지 영흥 부사(永興府使)가 되어 임지(任地)에서 겪은 일들을 일기체로 기록한 글이다. 「갑오일기」는 이남규의 문집인 『수당집(修堂集)』에 실려 있다.
[내용]
「갑오일기」를 쓴 1894년은 동학 농민 전쟁이 일어났고, 농민군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청군과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여 청일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일본군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반일적인 민씨 정권을 몰아내고 대원군 정권을 수립한 해이다. 김홍집(金弘集)[1842~1896], 박영효(朴泳孝)[1861~1939] 등이 정권을 잡아 갑오경장을 실시한 해이기도 하다. 일본군이 도성에 들어오고 우여곡절 끝에 작자는 영흥 부사가 되어 임지로 가는 과정과 영흥에서 치민(治民)하는 내용을 기록했다. 「갑오일기」 중에서 포천에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7월 8일 맑음. 아침에 길을 떠나 참봉 문산(文山) 이규진(李圭鎭)의 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송산(松山)에 들러 정자공(正字公)과 강릉공(江陵公)의 산소에 성묘한 뒤 포천(抱川) 축석령(祝石嶺)에서 잤다. 이 날 □십 리를 왔다.
9일 맑음. 송우점(松隅店)에서 아침을 먹고, 자하리(紫霞里)에 있는 진사 조언식(趙彦植)의 집에 들러 유숙하였다. 이 날 □십 리를 왔다.
10일 맑음. 아침에 길을 떠나 10리를 가니 금수정(金水亭)이 바라보였는데, 냇물의 빛과 나무의 색깔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한가로이 더불어 어우러져 지내면서 자연에 동화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그러나 갈 길이 너무 바빠서 한번 올라가 이를 조망하며 즐길 겨를이 없어 몹시 아쉬웠다. 영평(永平)의 신장점(新場店)에서 점심을 먹고, 철원(鐵原)에서 잤다. 이 날 □십 리를 왔다.”
위에서 보듯이 포천은 서울에서 금강산이나 함경도로 나가는 길목에 있어서 하루나 이틀을 유숙하는 곳으로 자주 언급된다.
[특징]
이남규는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있던 1892년에 문과에 급제했고, 동부승지(同副承旨)에서 형조 참의(刑曹參議)가 된 것은 소위 갑오경장이 있던 해였다. 이남규는 일본병이 제멋대로 궁궐을 범한 것을 상소문에서 준열하게 책망하여 내쫓고자 하였다. 이후 영흥 부사로서 임지에 있었던 이남규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명성 황후(明成皇后)[1851~1895]의 폐위와 단발령(斷髮令)의 강행을 반대하여 인수(印綬)[인끈]를 내던지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