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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평사해지관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896
한자 送李評事海之關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엄익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78년 - 「송이평사해지관서」 저자 이행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34년 - 「송이평사해지관서」 저자 이행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634년 - 「송이평사해지관서」를 수록한 『용재집』 간행
성격 한시
작가 이행

[정의]

1519년부터 1521년 사이에 이행이 평안도로 떠나는 이해를 환송하며 포천에서 지은 한시.

[개설]

「송이평사해지관서(送李評事海之關西)」는 1519년부터 3년 사이에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이 평안도 병마평사(兵馬評事)로 부임하는 이해(李海)를 환송하며 포천에서 지은 오언율 형식의 한시이다. 「송이평사해지관서」이행의 문집인 『용재집(容齋集)』 권 2에 실려 있다.

[내용]

관서시웅진(關西是雄鎭)[관서[평안도]는 그야말로 큰 번진이니]

막부요명류(幕府要名流)[막부 요직은 명류라야만 맡지]

지자유림수(之子儒林秀)[이 사람은 유림의 빼어난 수재라]

유시물망우(惟時物望優)[당대에 물망이 매우 우수하도다]

조서친자선(詔書親自選)[임금께서 조서로 친히 선발하시니]

붕구석난류(朋舊惜難留)[오랜 벗들은 애석해나 만류하지 못하네]

조적편수착(祖逖鞭須着)[조적[동진의 무장]의 채찍을 모름지기 잡고]

반초필가투(班超筆可投)[반초[후한의 역사가]가 붓을 던지는 것 같이]

상호군정료(桑弧君定了)[뽕나무 활의 뜻을 그대는 필시 이루련만]

와정아감수(蛙井我堪羞)[우물 안 개구리 꼴인 나는 실로 부끄럽구나]

매사변진식(每使邊塵息)[매양 변방의 전란 티끌 그치게 해야]

방관간식우(方寬旰食憂)[비로소 임금의 근심을 풀 수 있으리]

고풍취대수(高風吹大樹)[높은 바람은 큰 나무에 불어오고]

애일조경구(愛日照輕裘)[아까운 해는 가벼운 갖옷을 비추네]

의중언무이(意重言無已)[뜻이 무거워 말을 그치지 못하고]

정생루불수(情生淚不收)[정이 일어나매 눈물 거둘 수 없네]

척령명철야(脊令鳴徹夜)[척령(鶺鴒)[할미새]은 밤새도록 울건만]

홍안격련추(鴻雁隔連秋)[기러기는 이태 가을을 오지 않구나]

신문빙행이(訊問憑行李)[그대의 이번 길에 안부 묻고자 하노니]

근거달포주(勤渠達抱州)[포주로 소식 좀 전하라 형에게 권해 주오]

중형 시목의주(仲兄時牧義州)[중형(仲兄)[이기]이 이때 의주 목사(義州牧使)로 있었다]

[특징]

「송이평사해지관서」는 관서(關西)[평안북도·평안남도·황해도 북부 지역의 별칭]로 떠나는 이해를 위해 지은 시인데, 그 말미를 의주 목사로 재직하고 있는 둘째 형 이기(李芑)[1476~1552]에게 작가 이행이 거주하는 포주(抱州)[현 경기도 포천]로 소식 좀 주라고 전해 달라는 부탁으로 마감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송이평사해지관서」는 이기가 평안도 의주 목사로 재직하던 1519년~1521년 무렵의 작품이다.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
  • 한국 고전 번역원 한국 고전 종합 DB(http://db.itkc.or.kr)
  • 한국 역대 인물 종합 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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