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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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沃川夜夢到抱川臥龍潭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흥모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86년 -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 저자 조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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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69년 -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 저자 조경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03년 -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을 수록한 『용주유고』 간행 |
배경 지역 | 와룡담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덕둔리 |
성격 | 한시 |
작가 | 조경 |
[정의]
조선 후기 조경이 꿈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沃川夜夢 到抱川臥龍潭)」[옥천에서 밤에 꿈을 꿨는데 포천의 와룡담에 도달했네]은 조선 후기 문신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몸은 옥천에 있지만 꿈속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臥龍潭)에 대하여 지은 한시이다. 와룡담이 현재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의 조경에 대한 기록 가운데, “…… 골짜기 어귀에 계곡물이 모여 못이 되었는데 ‘와룡담’이라 하였으므로 자호(自號)를 ‘용주’라 하였으며…….”라는 기록과, 조경이 배향되어 있는 ‘용연 서원(龍淵書院)’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용연 서원의 이름을 ‘용연(龍淵)’이라 한 것은 용주 조경의 호를 따서 명명한 것일 수도 있으나, 용연 서원이 위치한 곳의 지명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일반적 관례로 서원의 명칭은 주향자의 호나 지명에 연유한다. 이와 같은 논리로 본다면 현재 용연 서원이 있는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부근 어딘가에 연못이나 소(沼)가 있었을 것이고, 그 명칭은 ‘용연’, ‘용못’일 개연성이 짙다.
현재 신북면 덕둔리의 ‘미라치’가 그곳이 아닌가 한다. 덕둔리 서북쪽에 있는 미라치는 산내의 모든 계곡의 물이 이곳에서 합쳐져 덕둔리 앞으로 12굽이를 돌아 학담리 앞 한탄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옛날에는 용을 ‘미르’, ‘미’로 불렀다. 용연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생긴 ‘용주’라는 지명이 우리말로 구전되면서 ‘미라치’로 정착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라치에 용남소가 있다고 하는데, 이 소가 바로 용연일 것이다. 이곳에 용이 살았다고 하는 전설이 이를 뒷받침한다.
조선 후기 포천의 사찬(私撰) 읍지인 『견성지(堅城誌)』 「명승」조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다. “용연은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길고 굽이진 동리 계곡인데 맑고 깨끗하기가 그림과 같다. 용주 조경 선생이 때때로 유람하던 곳이다.” 이 기록으로 보아 조경이 자신의 호를 용주라 한 것도 이곳의 지명에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용남소는 바위로 메워져서 소의 모습을 살필 수 없다.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은 조경의 문집 『용주유고(龍洲遺稿)』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나그네가 되어 말안장이 다 닳도록 호남을 유람하는데/ 여관의 희미한 불빛 아래 잠들어도 아직 깊지 않네./ 꿈으로 돌아가면 천리가 먼 것을 모르니/ 잠깐 와룡담에 도달할 수 있네[客遊鞍馬盡湖南/ 旅舍殘燈寢未酣/ 歸夢不知千里遠/ 暫時能到臥龍潭].
[의의와 평가]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은 포천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인 용주 조경과 포천의 친연성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유람 중에 고향에서 자주 찾던 와룡담에 대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