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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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穆兪公遺墟碑閣重建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19년 - 「충목유공 유허비각 중건기」 저자 김평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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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890년 - 「충목유공 유허비각 중건기」 김평묵 저술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91년 - 「충목유공 유허비각 중건기」 저자 김평묵 사망 |
배경 지역 | 충목단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27 |
성격 | 기문 |
작가 | 김평묵 |
[정의]
1890년 김평묵이 경기도 포천에 있는 유응부의 유허비각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개설]
「충목유공 유허비각 중건기(忠穆兪公遺墟碑閣重建記)」는 1890년(고종 27) 포천 출신의 유학자인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사육신(死六臣)의 한 명으로 분류되는 유응부(兪應孚)[?~1456]의 유허비를 중건한 사실을 기록한 기문(記文)이다. 유허비각의 중건은 유응부의 후손인 유봉재(兪鳳在)를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며, 「충목유공 유허비각 중건기」는 유봉재가 김평묵에게 의뢰한 것이다. 기문에서 김평묵은 유응부의 충(忠)과 유봉재의 효(孝)를 높이 기리고 있다.
[구성]
「충목유공 유허비각 중건기」는 먼저 유응부의 충의를 소개한 뒤, 이어 그의 유허비각이 처음 건립된 과정과 중건 사실을 설명하였다. 계속해서 김평묵이 중건 기문을 쓰게 된 경위를 소개하였고, 마지막으로 유응부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유응부의 유허비는 그의 사후 수백 년이 지난 영조 연간에 지역 유생이 중심이 되어 건립하였고, 이재(李縡)[1680~1746]가 기문을 작성하였다. 이어 유응부를 제사지내는 제단을 설치한 뒤 한남군(漢南君) 이어(李王+於)[?~1457]와 양치(楊治)를 추가로 제향하였다.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유허비의 내용이 소멸되자 그의 후손인 유봉재가 이 소식을 듣고 유생들과 협력해서 다시 유허비와 그 비각을 세웠다. 그러고는 김평묵에게 기문을 요청하였다. 기문에서 김평묵은 그동안 유허비의 역사를 정리한 뒤 비각의 중건으로 인해 선생이 다한 충과 후손 유봉재의 효가 드러났음을 천명하였다.
[특징]
충목단(忠穆壇)은 유응부의 유허비를 비롯한 각종 기념물을 보관한 비각인데, 1987년 2월 12일 경기도 기념물 제102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27번지에 있는 충목단은 사육신의 충절을 널리 후세에 알리고자 1746년(영조 22)에 설치하였다. 특히 유응부의 유허비는 붕당 정치(朋黨政治)로 절의가 최고의 덕목으로 정착되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