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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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抱川加次里先壟下祠堂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86년 -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 저자 조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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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64년 -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 조경 저술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69년 -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 저자 조경 사망 |
배경 지역 | 한양 조씨 사당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
성격 | 기문 |
작가 | 조경 |
[정의]
1664년 조경이, 1652년에 완성된 포천의 한양 조씨 사당에 대하여 지은 기문.
[개설]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抱川加次里先壟下祠堂記)」는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위치한 한양 조씨 용주(龍洲) 조경(趙絅)[1576~1669] 가문의 사당에 대한 기문(記文)이다. 조경이 주도하여 사당이 완성된 것은 1652년(효종 2)이고,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는 조경이 1664년(현종 5)에 창작한 것이다.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에서는 사당을 세우는 과정과 조경에 대한 필자의 감회 등이 서술되었다.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는 조경의 문집인 『용주유고(龍洲遺稿)』 권(卷) 11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는 먼저 서울에 한양 조씨 대종가(大宗家)와 조경이 속한 소종가(小宗家)의 사당이 있었던 사실을 말한 뒤 전란으로 소실되는 과정을 말하였다. 이어 자신이 포천에 낙향해서 노년을 보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집안 자제들과 함께 사당을 세우는 과정, 사당의 규모와 모습에 대한 서술 등으로 이어지며, 마지막 부분은 조경의 감회와 후손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으로 마치고 있다.
[내용]
본래 한양 조씨 대종가의 사당은 서울 흥인문 밖에 위치했으나, 승지를 지낸 조수강(趙壽崗) 때에 별도로 소종으로 분파되어 사당을 따로 세웠다. 소종가의 사당은 서울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서울의 종가와 사당이 모두 소실되어 한동안 복구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차 조경이 포천에 낙향하여 노년을 보내면서 1651년(효종 2) 집안의 자제들과 함께 사당에 대한 공역을 시작하여 1652년 10월에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고조 이하 부친까지를 사당에 모셨다. 조경은 기문에서 사당의 완성에 대해 백 년 동안 바라던 것을 드디어 이루었다고 감회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는 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입향한 한양 조씨 조경 가문이 17세기에 집성촌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