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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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抱川客館有感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70년 - 「포천객관유감」 저자 김상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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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52년 - 「포천객관유감」 저자 김상헌 사망 |
성격 | 한시 |
작가 | 김상헌 |
[정의]
1637년 이후에 김상헌이 포천 객관에서 느낀 감흥을 노래한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포천객관유감(抱川客館有感)」은 1637년(인조 15) 이후인 만년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포천 객관의 감회를 읊은 한시이다.
김상헌은 자(字)를 숙도(叔度), 호(號)는 청음, 석실산인(石室山人), 서간노인(西磵老人)이라 했다. 본관은 안동(安東),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윤근수(尹根壽)[1537~1616]의 문인으로 신흠(申欽)[1566~1628], 이정구(李廷龜)[1564~1635], 홍서봉(洪瑞鳳)[1572~16 광주 목사, 연안 부사를 거쳐 1624년(인조 2) 대사간이 되었다. 이어서 여러 관직을 두루 지내고, 1643년(인조 21) 볼모로 심양에 잡혀갔다가 1645년45], 이안눌(李安訥)[1571~1637], 장유(張維)[1587~1638] 등과 교유했다.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596년(선조 29) 정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가 된 이후에(인조 23) 세자와 함께 심양에서 돌아왔다. 1646년(인조 24) 좌의정에 올랐고, 사후에 양주의 석실 서원 등 여러 곳에 배향되었다.
김상헌은 생전에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시문을 자편해 놓았다. 『청음선생집(淸陰先生集)』은 40권 16책이다. 「포천객관유감」은 김상헌의 문집인 『청음선생집』 권(卷) 3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황허처처소인가(荒墟處處少人家)[황량한 터 곳곳마다 몇몇의 민가]
고목사양집란아(古木斜陽集亂鴉)[석양 고목(古木)에 까마귀 어지러이 모여드네.]
부세기회흥폐사(浮世幾回興廢事)[부질없는 세상에서 흥폐(興廢)가 몇 번이었나]
춘풍자발야도화(春風自發野桃花)[봄바람에 야생 복숭아꽃이 저절로 피어나네.]
[특징]
김상헌은 양주의 석실에서 거처했기 때문에 이웃의 포천에 들를 기회가 자주 있었다. 이에 따라 김상헌의 손자인 김수항(金壽恒)[1629~1689]이 포천의 백운산 자락인 일동면에 자리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포천객관유감」에는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전쟁으로 황량해진 포천 객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청음집』 권 3에 칠언 절구의 「단월체류(丹月滯留)」 시에, 이하는 정축년[1637] 이후 지은 것이라고 주석이 달려 있다. 따라서 김상헌의 만년작으로 추정되는 「포천객관유감」은 인간사의 흥망성쇠와 자연의 천진함이 잘 대비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