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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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抱川道中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69년 - 「포천도중」 저자 허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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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03년 - 「포천도중」 허균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18년 - 「포천도중」 저자 허균 사망 |
성격 | 한시 |
작가 | 허균 |
[정의]
1603년 허균이 금강산을 유람하고자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개설]
「포천도중(抱川道中)」은 1603년(선조 36)에 조선 후기의 문신 성소(惺所) 허균(許筠)[1569~1618]이 풍악산[금강산]을 유람하려고 집을 떠나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허균의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성소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권필(權韠)[1569~1612], 이안눌(李安訥)[1571~1637], 조위한(趙緯韓)[1567~1649], 이재영(李再榮)[1553~1623], 정응운(鄭應運), 조찬한(趙纘韓)[1572~1631], 기윤헌(奇允獻)[1575~1624], 임숙영(任叔英)[1576~1623] 등과 교유했다. 1594년(선조 27) 정시에 합격하고 옥당에 들어갔다. 1597년(선조 30) 중시(重試) 문과에 합격하고, 이후에 삼척 부사, 형조 판서, 좌참찬 등을 지냈다. 1618(광해군 10) 반역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받고 복주(伏誅)[형벌을 순순히 받아 죽게 함]되었다.
「포천도중」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 권(卷) 1에서 시부(詩部) 1의 ‘풍악 기행(楓嶽紀行)’에 실려 전한다.
[내용]
예도인귀곽(刈稻人歸郭)[벼 벤 사람들 성 밖으로 돌아오고]
함로안하전(銜蘆雁下田)[갈대를 문 기러기 밭에 내리네]
세화행모의(歲華行莫矣)[이 해도 거의 저물어 가니]
객황전처연(客況轉凄然)[나그네 절로 처량해지네]
원수사탄일(遠岫斜呑日)[먼 산은 비스듬히 해를 삼키고]
고촌반대연(孤村半帶煙)[외딴 마을 절반이 연기를 띠었네]
평생권유한(平生倦遊恨)[놀기에 지친 평생의 한이지만]
용빈근조년(容鬢近彫年)[안색 모발 어느덧 시드는 나이네]
[특징]
1603년 금강산을 유람하며 지은 작품을 모은 ‘풍악 기행’ 중의 한 작품이다. 30대의 한참 나이에 금강산을 유람하기 위해서 포천을 지나는 길에 감회를 읊은 것이다.
[의의와 평가]
허균은 1611년(광해군 3) 함열에 유배를 갔을 때에 이전에 저술한 작품을 선정하여 문(文) 400여 편, 시(詩) 1,400여 수, 설(說) 300여 편을 추려서 시, 부, 문, 설의 사부로 나누어 64권으로 편차하고 이름을 『성소부부고』라고 하였다. 흔히 「홍길동전」의 작자로 더 잘 알려졌지만. 허균은 시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녔던 인물이다. 저자의 『국조시산(國朝詩刪)』은 그러한 산물이다. 「포천도중」도 묘사가 치밀하고 자연과 인정이 잘 어우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