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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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抱川墓舍偶吟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33년 - 「포천묘사우음」 저자 이민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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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88년 - 「포천묘사우음」 저자 이민서 사망 |
배경 지역 | 이민서 묘소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산22 |
성격 | 한시 |
작가 | 이민서 |
[정의]
조선 후기 이민서가 포천의 묘사에서 우연히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개설]
「포천묘사우음(抱川墓舍偶吟)」은 조선 후기의 문신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1633~1688]가 포천 선영에 들렀을 때 묘사(墓舍)에서 뜻하지 아니하게 지은 한시이다.
이민서의 자는 이중(彛仲)이고, 호는 서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아들로 김수항(金壽恒)[1629~1689], 신정(申晸)[1628~1687], 이익상(李翊相)[1625~1691] 등과 교유했다.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652년(효종 3) 증광 별시 문과에 을과로 합격하였다. 그 후 나주 목사, 고양 군수, 광주 목사를 거쳐 1680년(숙종 6) 승지, 대사간이 되었다. 그 외에도 함경 감사, 대제학, 대사헌, 이조 판서, 예조 판서, 호조 판서, 형조 판서 등을 지냈다. 사후에 포천 선영에 묻혔다.
「포천묘사우음」은 이민서의 문집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 권(卷) 5에 실려 있다. 『서하선생집』은 원집 17권, 부록 합 8책으로 되어 있다. 권 1~5는 사(詞) 2수, 부(賦) 7수, 시(詩) 481수, 악장(樂章) 1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사는 김수항의 딸에 대한 애사 등이고, 시는 오언과 칠언의 고시, 절구, 율시, 배율로 시체별로 분류하고 각기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내용]
고산송회울창창(故山松檜鬱蒼蒼)[고향 산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울창한데]
수식도괴이십상(手植桃槐已十霜)[손수 심은 복숭아와 느티나무도 이미 10년을 지냈네.]
인사자연다감개(人事自然多感慨)[인간사 자연히 감개할 일이 많으니]
야정종차막괴장(野情從此莫乖張)[초야에 살고픈 마음, 이로써 펼치려 하네.]
독련곡리연류수(獨憐谷裏涓流水)[홀로 가엾도다. 골짜기 속에 졸졸 흐르는 물이여.]
신축암변구미당(新築巖邊苟美堂)[바위 위에 새로 지은 집은 진실로 아름답네.]
감괴린옹래문신(堪愧隣翁來問訊)[찾아온 이웃집 노인의 안부 인사에 부끄러우나]
백두유미사주행(白頭猶未謝周行)[백발이 되어도 주행(周行)을 그만두지 못하네.]
[특징]
이민서는 주로 파주의 교하에 우거했지만, 「포천묘사우음」은 포천의 선영에 들렀을 때 지은 시이다. 자연과 더불어 천하를 유유자적하고자 하는 마음을 읊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민서는 포천에 부친 이경여를 비롯한 선영이 있었기에 자주 찾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김수항과의 특별한 교분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밖에도 조상의 선영을 찾아 읊은 비슷한 제목의 오언 율시[「포천묘하우음(抱川墓下偶吟)」] 2수도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