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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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田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연지안길[죽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신촌면 죽전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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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신촌면 죽전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죽전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북면 죽전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죽전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죽전리에서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죽전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5.56㎢ |
가구수 | 95가구 |
인구[남, 여] | 187명[남 86명, 여 101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죽전리(竹田里)는 마을 뒤에 대나무가 무성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처음에 죽전(竹田)이라 부르다가, 죽전·지당·연지·소일 4개 동을 하나의 동으로 하여 죽전이라 부르게 됨에 따라 원래의 죽전마을을 원죽전(元竹田)이라 부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죽전마을은 경주 박씨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으며, 지당(池溏)마을은 400여 년 전 한씨(韓氏)와 김씨(金氏)가 개척하였고, 소일(蘇逸)마을은 문씨(文氏)가 개척하였으며, 연지(蓮池)마을은 류씨(柳氏)와 김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군·면을 통폐합할 때, 신녕군을 영천군으로 통폐합함에 따라 영천군과 신녕군의 경계 지역은 화동면·지곡면·신촌면으로 재구성하여 영천군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신녕군 신촌면(新村面) 죽전·상송·하송·용소·법화·옥계의 6개 동과 영천군 자천면 정각·횡계·자천·공덕·오동·입석의 6개 동을 병합하여 영천군 신촌면으로 하였다.
1934년에는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죽전리는 영천군 화북면(華北面)에 속하게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자로 죽전리는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함에 따라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죽전리는 봉림산(鳳林山)[682m]과 방가산(方駕山)[756m]이 마을 뒤에 솟아 있고 보현산(普賢山)의 지맥이 북쪽으로 뻗어 앞을 감싸주고 있는 산기슭에 자리 잡은 산록 마을이다. 또한, 죽전리는 상송리와 35번 국도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대에 마을이 위치하며 경사가 심한 산촌 암석 마을이다.
군위군 고로면(古老面)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 뒷산에는 화강암과 대리석이 다량 매장되어 있어 각종 건축 자재 및 묘석·공예석 등으로 반출되고 있다. 수기지에서 발원하는 고현천은 영천 북부 지역의 젖줄로서 죽전리에서 시작하여 영천시 내까지 흘러 금호강(琴湖江)에 유입된다.
[현황]
죽전리의 동쪽은 하송리와 옥계리, 남쪽은 옥계리·자천리와 화남면, 서쪽은 군위군 고로면, 그리고 북쪽은 상송리와 접하고 있으며, 죽전1리와 죽전2리로 구분된다. 자연 마을로는 원죽전·직당·연지·소일 등이 있다. 죽전리의 면적은 5.56㎢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95가구, 187명으로, 남자가 86명, 여자가 101명이다.
죽전리에 무한히 매장되어 있는 화강암석은 석질이 좋아 건축 자재나 묘비석 등으로 전국으로 반출되고 있는데, 국회의사당 건물도 이곳의 돌이 쓰였다고 할 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