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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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梧桐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천문로[오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신촌면 오동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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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신촌면 오동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오동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북면 오동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오동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오동리에서 영천시 화북면 오동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오동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동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41㎢ |
가구수 | 39가구 |
인구[남, 여] | 88명[남 46명, 여 42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오동리(梧桐里)는 옛날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리(梧里)라 하다가 오동리라 하였다. 오동나무 속이 빈 것 같이 마을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한다는 전설에 따라 마을 가운데는 집을 짓지 않고 공터로 둔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오동리는 520여 년 전 조선 중종 때 안우곤(安遇坤)이란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옛날에는 봉황산 밑에 자리 잡았다고 하여 봉화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군·면 통폐합 때, 신녕군을 영천군으로 통폐합함에 따라 영천군과 신녕군의 경계 지역은 화동면·지곡면·신촌면으로 재구성하여 영천군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신녕군 신촌면(新村面) 죽전·상송·하송·용소·법화·옥계의 6개 동과 영천군 자천면 정각·횡계·자천·공덕·오동·입석의 6개 동을 병합하여 영천군 신촌면으로 하였다.
1934년에는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동리는 영천군 화북면(華北面)에 속하게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자로 오동리는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함에 따라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 8월 21일 영천시 조례에 의하여 화북면 오리(梧里)를 오동리로 개칭하였다.
[자연 환경]
오동리는 산은 얕고 들은 넓어 예부터 농사에 유리하여 사람 살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왔다. 기룡산(騎龍山)[931m] 지맥의 한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달리다가 오동리에서 고현천을 만나 평지를 이루며, 마을 앞 서쪽으로 방가산(方駕山)의 지맥이 뻗어 내려 봉기(鳳基)덤을 만든다. 봉기덤 아래로 금호강(琴湖江)의 지류인 고현천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현황]
오동리의 동남쪽은 오산리, 서쪽은 영천시 화남면, 그리고 북쪽은 자천리와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봉하동·신녕땅·강변[갱빈덤]·오돌가래·[웃가래·아랫가래·오동] 등이 있다. 오동리의 면적은 1.41㎢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39가구, 88명으로, 남자가 46명, 여자가 42명이다.
국도 35호선이 오동리 마을 내 서쪽을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평지가 넓어 벼농사에 유리하다. 주요 문화재로는 제오헌(霽梧軒)·죽송양화당(竹松揚花堂)·모의재(慕宜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