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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220
한자 琴湖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천문로[금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영천군 지곡면 금호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금호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금호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6년 4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금호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금호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남면 금호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금호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남면 금호리에서 영천시 화남면 금호리로 개편
행정구역 금호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금호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24㎢
가구수 160가구
인구[남여] 338명[남 174명, 여 164명]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호리(琴湖里)의 ‘금호’ 유래는 바람이 불면 강변의 갈대밭에서 비파 소리가 나고 호수처럼 물이 맑고 잔잔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금호리에서 가장 큰 마을 중리는 1500년(연산군 6)경 창녕 조씨안동 권씨가 들 가운데 거주하였다고 하며, 중리 북동쪽의 내지는 1580년(선조 13)경 창녕 조씨 조황(曺艎)이라는 선비가 금호리에 정착하여 개척하였다. 질구지·옹기굴은 옛날부터 천연자원인 점토를 이용하여 옹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여기저기에 옹기굴이 많아 옹기굴이라 불렀으며, 질그릇을 만든다는 뜻에서 질구지라고도 한다.

금호리는 1914년 영천군 지곡면(知谷面)에 속하였고, 1934년 4월 1일 영천군 화북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4월 1일 영천군 화남면에 속하였으며,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금호리의 자연 환경은 화남면에서 고현천을 따라 화북면으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하천과 평야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금호리 마을 뒤로 구릉지를 형성하고 고현천(古縣川)을 건너 연이은 기암절벽은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의 지형이 북쪽은 비교적 높은 구릉지며, 동남쪽은 평지로 되어 있기에 겨울에는 매우 따뜻한 곳이다.

옛날부터 마을 뒤 구릉지를 개발하여 논밭을 만들 때 땅에서 많은 가야 토기(加耶土器)가 출토됐다. 지금도 이곳을 파 보면 토기가 출토되며 토질이 모두 점토(粘土)이다.

[현황]

금호리의 면적은 5.24㎢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160가구, 338명으로, 남자가 174명, 여자가 164명이다. 자연 마을로는 중리(中里)·구마강변(驅馬江邊)·내지(內旨)·질구지 등이 있다. 화남면에서 지형적 조건이 농사에 가장 유리한 하천과 평지가 많은 지역으로 여전히 벼농사를 많이 하고 있지만, 차츰 포도 등 밭농사로 전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도로 개설이 많이 되어 교통 입지 여건이 좋아져서 도시인들의 전원주택지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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