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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걸 정효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47
한자 丁大杰旌孝閣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정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30년 - 정대걸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57년 - 정대걸 사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05년 - 정대걸 정려
건립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정대걸 정효각 건립
현 소재지 정대걸 정효각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 지도보기
성격 비각
양식 이익공|홑처마|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문물|보호단위 등급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정대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개설]

정대걸(丁大杰)[1830~1857]의 본관은 나주, 자는 주서(周瑞), 호는 경와(敬窩)이다. 정대걸은 어릴 때부터 지성으로 부모를 모신 효자로 이름이 났다. 어머니의 오랜 병중에 하루는 회를 먹고 싶어하시니 얼음을 깨고 낚시하면서 진정으로 기도를 하니 고기가 잡혔다고 하는 등 그의 효성이 알려져 정려되었다.

[위치]

정대걸 정효각영천시 화남면 대천리에 있다. 대천리는 영천에서 청송으로 이어지는 국도 35호선 화남면 소재지에서 청송 방면으로 1.7㎞ 정도 가면 금호2리 질구지마을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안천리행 진입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들어가 안천1리 능계마을을 지나면 월곡리와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다시 좌측으로 접어들어 들어가 온천마을을 지나 끝까지 들어가면 대천리가 나온다.

[변천]

정대걸 정효각은 1905년 8월에 정려가 내려지고 화남면 대천리에 정효각을 세웠다. 1906년 군수 신승휴(申勝休)가 비문을 지어 비를 세웠고, 비각은 1906년 10월에 게판(揭板)하고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정대걸 정효각은 단칸 규모의 맞배지붕 목조 건물로 일반적인 비각 형태이다. 비각 주위는 방형의 시멘트 블록 담장을 두르고 일각문을 통해 비각에 들어간다. 비각은 원형 기둥을 세운 다음 주 상부에 창방을 건너지르고 연화문을 초각한 앙서를 이중으로 표현한 이익공 양식이다. 벽은 홍살 벽으로 처리해 내부의 비가 보이도록 했다. 건물 전체 목부재에 화려한 단청을 입혔다.

박공 면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에 대비했고 지붕은 홑처마에 한식 기와를 이엇다. 비각 전면 상부에 ‘정효각(旌孝閣)’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데 끝에 ‘병오십월 일(丙午十月 日)’이라고 새긴 게판연대(揭板年代)가 있다. 병오의 간지를 볼 때 1906년에 비각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각 내부에는 정대걸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현황]

정대걸 정효각대천리 골목의 민가 앞에 방형의 시멘트 블록 담장으로 비각을 보호하고 있다. 건물의 단청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약간 탈색되어 있다. 정대걸의 묘소는 화산면 대기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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