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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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應璣妻烏川鄭氏孝烈閣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자 |
건립 시기/일시 | 1606년 - 정응기 처 오천 정씨 효열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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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정응기 처 오천 정씨 효열각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 |
성격 | 비 및 비각 |
양식 | 이익공|겹처마|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정응기 처 오천 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열각.
[개설]
정응기(丁應璣)의 처 오천 정씨(烏川鄭氏)[영일 정씨(迎日鄭氏)]는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입을 피해 신산[노고산]으로 시부모와 함께 피신했다. 하지만 왜군에게 붙잡혀 시아버지는 왜군에게 죽고 시어머니도 죽이려 하면서 자신을 핍박하자 기지를 발휘해 시어머니를 보내주면 순순히 따라가겠다고 하고 먼저 시어머니를 도망치게 한 후 자신은 1리 정도 왜적을 따라가다 자결했다. 난이 끝난 후 이 사실이 선조에게 전해져 정려를 받았다.
[위치]
정응기 처 오천 정씨 효열각이 있는 효정리는 용호천[화산면 당지리 화산산맥에서 발원해 청통면 용천리에서 신녕천에 합수되는 지천]으로 인해 양분되어 있던 효자문마을과 괴정마을이 합쳐져 되었다고 하는데, 효열각은 효자문마을 남단에 있다.
과거 이곳에서 신녕 현청이 있는 신녕면 화성리로 가기 위해서는 효자문마을 앞길을 통해 산길로 넘어갔다. 영천에서 군위·의성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 화산면 덕암리에서 우측의 화덕 초등학교 방면으로 가면 효정리 강변마을에 이른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좀 더 상류로 올라가면 작은 교량이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효열각이 있다.
[변천]
정응기 처 오천 정씨는 정유재란 때 시어머니를 구하고 자신은 자결해 효와 열행을 한 행적으로 『화산지(花山誌)』에 따르면 1606년(선조 39)에 정려를 받아 효열각을 건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효열각은 단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 건물 안에 비가 있는 일반적인 비각 형태이다. 주위에 방형의 시멘트 블록담장을 두르고 담장 정면 중앙의 일각문을 통해 비각으로 드나든다. 효열각은 낮은 기단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워 건물을 완성했다. 주상부에는 창방을 건너지르고 연화문을 초각한 이중의 앙서 위에 운공을 표현한 이익공 양식이다. 전면 상부 처마 밑에 ‘효열각(孝烈閣)’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벽은 사면을 홍살벽으로 처리했고 건물 전체 목부재에 화려한 단청을 입혔다.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에 대비했고 지붕은 한식 기와를 이엇다.
[현황]
정응기 처 오천 정씨 효열각의 비각의 기둥 사이에는 화반이 놓여 있는데 일각문 전면과 함께 태극 문양이 단청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목부재의 상태로 보아 건립 당시의 것으로 보기에는 힘들다. 지붕의 기와 중 암막새는 일식 기와이고 수막새는 조선 후기의 양식으로 혼용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여러 차례 보수되었거나 중건 등의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