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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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山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900년 - 금산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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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11월 1일 - 금산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금산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금산당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275번지 |
성격 | 고택 |
양식 | 장혀수장|홑처마|맞배지붕 |
정면 칸수 | 안채: 6.5칸|사랑채: 4칸 |
측면 칸수 | 안채: 1칸|사랑채: 3칸 |
소유자 | 조욱현 |
관리자 | 조욱현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문물|보호단위 등급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3에 있는 고택.
[개설]
조명환(曺命煥)은 조선 후기 장릉 참봉을 지낸 조병문(曺秉文)의 둘째 아들로 부인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조선 후기 학자 광주인(廣州人) 이익환(李益煥)[1838~1886]의 다섯째 딸이다.
금산당은 조병문이 둘째 아들인 조명환에게 살림집으로 지어준 고택으로 현재 사랑채 종도리 장혀에 적혀있는 상량문에 의하면 대한 4년, 즉 1900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금산당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3에 해당한다. 금호읍에서 대창면으로 이어지는 금창교[금호강에 놓인 도로교량]를 건너 금창로를 따라 3.5㎞ 정도 가면 좌측 동쪽으로 오계리 종동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몇 채의 고택이 보이는데 두 번째 집이 금산당이다.
[변천]
건립 당초에는 안채 정면 좌측에 3칸 집이 있어 전체적으로 튼 ‘口’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었고, 안채 우측으로 협문을 통해 만취당으로 연결되었으나 현재는 막혀 있다. 또 사랑채 정면 좌측 옆으로 고방 및 방앗간채와 사랑채 입구에 문간채가 있어 반가의 격식을 갖추었지만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사주문 형태의 대문채, 변소로 일곽을 이루고 있다.
[형태]
금산당은 평평한 대지에 방형으로 담장을 두르고 ‘ㄱ’자형의 사랑채와 ‘一’자형의 안채가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외에 최근 사주문 형태의 대문과 안채 우측에 변소 칸이 지었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꺾이는 부분에 두 칸 대청이 있고 그 옆 안채 쪽으로 두 칸 온돌방을 두고 반대편으로 한 칸 온돌방과 끝단에 안채로 진입하기 위한 중문간을 두었다.
지붕은 홑처마로 건물 양단을 맞배지붕으로 처리하고, 대청 상부에는 팔작지붕으로 처리했다. 사랑채 우측면의 두 칸 온돌방 전면에는 반 칸의 퇴를 두었고 대청과 한 칸 온돌방 전면으로는 쪽마루를 부설하고 그 위에 평난간을 꾸며 헌함을 이루고 있다. 구조는 두벌대 자연석 바른 층 쌓기 한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대청과 퇴 칸 전면에만 두리기둥[원주, 원형 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썼다.
주 상부에는 간결한 장혀수장으로 처리했다. 창호는 안채 쪽 청방 간에는 사분합문을 들어열개로 처리하고 중문 쪽에는 쌍여닫이문으로 했는데 모두 가운데 불발기[문과 창호 가운데 빛이 잘 통하도록 내부 쪽에만 한지를 바르고 형태를 사각형, 팔각형 등으로 꾸민 것]를 둔 맹장지[문과 창호 안팎에 한지를 바른 것]로 처리했다. 나머지는 머름을 들이고 쌍여닫이 세살창으로 처리했다.
안채는 6칸 반의 ‘一’자 평면으로 좌측으로부터 부엌, 1.5칸 안방, 2칸 마루, 1칸 온돌방으로 배열되어 있다. 온돌방 앞뒤와 대청 뒤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가구는 삼량 가로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장혀 수장으로 처리했고,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현황]
금산당 동쪽에 인접해 영천 만취당[중요민속문화재 제175호]이 있고 남서쪽에 조식현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집의 소유와 관리자는 조욱현이지만 대문의 문패에는 아직 조규엽(曺圭曄)으로 된 문패가 걸려 있다. 대문 앞에는 늙은 회나무 한 그루 옆으로 문화재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금산당은 건립 당시 부속채가 사라졌지만 사랑채와 안채는 당시의 목조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사랑채의 중문간채는 하인방이 드나드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월방으로 처리하고 대청의 기둥을 자연스럽게 휜 부재를 쓴 것은 건축주의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금산당 우측의 만취당과 긴밀한 관계에 의한 동선, 또 평면 구성에서 만취당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