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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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槐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칠백로 8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650년 - 삼괴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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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951년 - 삼괴당 가묘 소실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70년경 - 삼괴당 소실 |
훼철|철거 시기/일시 | 2009년 - 삼괴당 사랑채 도괴 |
현 소재지 | 삼괴당 - 경상북도 영천시 칠백로 849[도남동 577] |
성격 | 가옥 |
양식 | 목조 가구식 |
정면 칸수 | 정침 : 5칸 |
측면 칸수 | 정침 : 4칸 |
소유자 | 안성호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에 있는 조선 숙종 대 학자인 삼괴당(三槐堂) 안세징(安世徵)이 거처하던 집.
[개설]
삼괴당(三槐堂)은 광주 안씨 집성촌인 도남동 도남마을에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 정침과 ‘一’자형 사랑채, ‘一’자형 삼괴당이 튼 ‘ㅁ’자형으로 배치하고, 정침 우측 뒤로는 가묘를 갖춘 상류 주택이었다.
[위치]
삼괴당은 경상북도 영천시의 4번국도[천문로] 상의 도동 네거리에서 한방로로 갈아타고 가다가 봉작 교차로를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우측의 칠백로로 600m 가량 들어간 도남마을 남동쪽에 있다. 도남마을회관에서 남쪽 50m 지점에 있는 육우당에서 다시 동쪽 40m지점에 있다.
[변천]
삼괴당은 정침·사랑채·삼괴당 등 3동이 튼 ‘ㅁ’자형으로 배치된 상류 주택이었으나 1951년에 폭격으로 가묘가 도괴된 뒤 철거되었고, 1970년대에 별채인 삼괴당이 소실되었다. 그 뒤 빈집으로 방치되다가 2009년 정침 전면에 있던 사랑채가 도괴되어 철거되어 현재는 ‘ㄱ’자형 정침만 남아 있다.
사랑채는 마구-방앗간-도장-사랑방으로 꾸며진 4칸 ‘一’자형 초가집이었고, 삼괴당은 방 1칸에 대청 2칸으로 꾸며진 별채로 3칸 ‘一’자형 맞배 기와집이었다. 가묘는 3칸 ‘一’자형에 맞배 기와집이었다.
[형태]
건립 당초에는 ‘ㄱ’자형 정침과 ‘一’자형 사랑채, ‘一’자형 삼괴당이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었고, 정침 뒤로 별곽에는 가묘가 있었다. ‘ㄱ’자형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주칸은 정면이 250~260㎝ 내외, 측면은 210~240㎝ 내외이다.
평면 구성은 중앙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음식방 1칸, 안방 1칸, 우측에 멀방 1칸을 각기 배열하였고, 큰방 전방으로는 직각으로 꺾어 정지 2칸에 샛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과 큰방 앞에는 툇마루·멀방 앞과 대청 2칸 중 우측칸 후면에 각기 쪽마루가 시설되었다. 음식방은 큰방과 분리하여 예전에 음식을 차리고 보관하던 방으로 좌측면에는 반침이 설치되어 있다. 정지는 2통칸 규모이고 음식방과 그 남쪽의 샛방쪽으로 각기 부뚜막을 설치하고 난방 및 취사를 위한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정지 벽체는 하인방과 상인방사이에는 판벽이고 상인방 상부는 살창 여러 개를 꽂았다.
구조는 자연석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두리와 네모기둥을 혼용해 세운 뒤 주상부는 민도리구조로 꾸몄다. 특히 기둥에 장부구멍이 나 있고, 전면 처마도리는 납도리이나 후면은 굴도리이다.
지붕은 영천 지역의 상류주택처럼 맞배지붕에 기와를 이은 홑처마 맞배 기와집이다. 특히 맞배지붕의 박공면에는 박공판이 설치되어 있고, 그 하부에는 다시 함석 차양을 대어 측면 벽체로 들이치는 비를 막도록 했다.
[현황]
정침·사랑채·삼괴당·가묘를 갖춘 상류 주택이었으나 현재 ‘ㄱ’자형 정침만 남아 있다. 오랫동안 빈 집으로 방치된 탓에 퇴락이 심해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
[의의와 평가]
당초 상당한 규모의 상류 주택이었으나 현재 정침 1동만 남아 있다. 현존 ‘ㄱ’자형 정침은 영남 지방 상류 주택 내 ‘중부형’과 상통하는 것으로 이들 지역간의 관계성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인 동시에 영천 지역 상류 주택 정침의 대표적인 평면 구성의 하나인 ‘一’자형 ‘영남형’ 정침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연구 자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