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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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圃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901년 - 화포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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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화포정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
성격 | 누정|정자 |
양식 | 팔작지붕의 겹집으로 민도리계 장혀수장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안동권씨 복야공파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에 있는 누정.
[개설]
화포정(華圃亭)은 조선 고종 때의 학자로 안동 권씨(安東權氏) 복야공파의 후손인 권호현(權浩鉉)의 강학지소(講學之所)이다. 권호현은 천성이 탁월하고 행의가 지순(至純)하였으며 평생 동안 후학 양성에 힘쓴 인물이다.
화포정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크게 공을 세운 권응수(權應銖)[1546~1608] 장군의 넷째 손자인 청류당(聽流堂) 권산보(權山甫)가 신녕면 화남리 갑티[갑현]마을에 입향해 건립한 청류당 종택이 있다. 화포정은 북쪽에 계곡을 끼고 입지한 계정(溪亭)으로 분류된다.
[위치]
신녕면사무소에서 북쪽 의흥 방면[갑현 방면]으로 가다보면 우측으로 권응수 장군 유적지가 있는 갑티마을의 입구가 보인다. 여기서 마을 안길로 쭉 들어가면 계곡 동쪽으로 청류당 종택이 있고 종택 앞 마당을 지나 산비탈로 난 소로를 따라 150m 정도 가면 대나무 숲 속에서 북서향하고 있는 화포정이 얼핏 보인다. 최근 관리인이 없어 화포정의 마당과 담장 일대로 대나무가 무성히 자라 밖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다.
[변천]
화포정은 조선 고종 때의 학자인 권호현이 후학을 위해 1901년(대한제국 광무 5)에 건립하였다. 화산면 가상리에서 신녕면 화남리로 이거해온 권응수의 후손 권산보가 청류당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화남리 갑티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청류당 권산보의 7~8세 손인 권재병(權載秉)은 청류당 남쪽 인근에 화남재(華南齋)를 건립했는데 권재병의 둘째 아들이 개울 건너에 양심당을 짓고 분가했다. 화포정은 양심당의 아들 권호현이 양심당 인근에 분가해 살면서 계곡 옆에 후학 양성을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화포정 내부 대청 상부에 상량문이 있는데 “○○○(九)○(五)(辛)(丑)이월십오일신해묘시수주상량(二月十五日辛亥卯時竪柱上樑)···.”라고 묵서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신축’의 간지는 묵서 양상이 분명하지 않아 ‘신축(辛丑)’년에 건립한 것으로 유추해 볼 뿐이다.
권호현은 고종 때의 인물이고 신축년은 고종 재위가 지난 광무 5년에 해당하는 1901년으로 고종조의 권호현이 건립한 화포정은 1901년일 가능성이 크다. 또 『화산지(花山誌)』 정사조(亭榭條)에 “고종신축건(高宗新築建)”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화포정의 건립 연대는 더욱 확실해 졌다.
정자 좌측면의 아궁이 상부에 시멘트 슬레이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불과 수십 년 전까지 관리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관리인이 없어 건물의 퇴락이 심하다. 이런 상태로 간다면 향후 수년 내에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형태]
화포정은 평면이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겹집 형태이다. 지붕은 팔작 기와집이며 가구는 기둥 상부를 간략한 민도리계의 장혀수장집으로 꾸민 오량가이다.
기단 앞으로 몇 단의 계단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출입은 정면 어칸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막돌 바른층쌓기로 네 벌대 또는 그 이상 되는데 전면 우측 칸의 기단은 아궁이를 내기 위해 트여있다.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활주를 받쳐 추녀부의 하중을 분산시키고 있다. 좌측면의 기단은 다른 면 보다 두 자[척(尺)] 정도 더 넓게 만들었다. 이는 실내에서 좌측면 뒤 열이 아궁이로 출입이 용이하게끔 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평면 구성은 우협칸이 앞·뒤 열을 통 칸으로 구성한 온돌방이고 중앙의 어칸 앞·뒤 열과 좌협칸의 앞 열은 ‘ㄱ’자형으로 트이게 해 마루를 깔았다. 좌협칸의 뒤 열은 한 칸 온돌방으로 꾸몄다. 우협칸의 배면에는 상·하 쌍여닫이문을 달아 벽장을 꾸몄고 좌협칸의 온돌방 좌측면에는 쌍여닫이문을 달아 반침으로 구성했다.
한편 좌협칸 앞 열의 마루 좌측면 상부에는 쌍여닫이판문을 달아 감실을 이루고 있다. 좌협칸 뒤 열 배면에는 외여닫이문을 달고 뒤로 쪽마루를 부설했고 우협칸 우측면에는 앞 열에 외여닫이, 뒤 열에 쌍여닫이문을 달고 건물 우측면 전체를 쪽마루로 구성하고 있다.
우협칸의 전면에는 쌍여닫이창 하부와 아궁이 상부에 쪽마루를 부설한 흔적[장부 구멍]이 보이고 좌협칸 전면에도 쪽마루가 있는데 다른 쪽마루 보다 그 폭이 반 정도[35㎝] 밖에 되지 않는 흥미로운 구성을 하고 있다.
대청은 중앙의 어칸에는 사분합들어열개문이고 좌협칸 앞 열의 마루 전면으로는 삼분합들어열개문으로 구성했다. 중앙 어칸 마루 배면으로는 쌍여닫이판문을 달았다. 마루에서 진입하는 우협칸 온돌방은 앞 열에 이분합들어열개문, 뒤 열에 쌍여닫이문을 달아 출입케 했고 좌협칸 온돌방으로는 우측면에 외여닫이문을 통해 출입케 하고 전면에는 쌍여닫이창을 달았으나 현재 탈락되었다.
건물의 구조는 가공하지 않은 덤벙주초[자연석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기둥 상부에 장혀를 수장한 장혀수장으로 구성했다. 어칸의 상부 구조는 위로 약간 휜 홍예형의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동자주를 세워 중도리를 받쳤다. 중도리 상부는 종보 위에 동자주형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전체적으로 간략한 구성이다.
[현황]
갑티마을은 화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지맥과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준령의 남사면에 위치해 동·서·북쪽이 산으로 둘러져 있는 산골마을이다. 마을에는 경충사, 청류당, 화남재, 양심당, 면와[2010년 큰사랑채가 철거됨] 등 안동 권씨 복야공파 후손들이 세거(世居)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권응수 장군의 유물 전시관을 비롯해 신라 때 창건한 현재의 한광사가 있다. 화포정 동쪽 산 정상부에는 삼국 시대에 축성했다고 전해지는 성터가 있으며 정자 북서쪽 아래에는 담장 아래로 계곡이 흐르고 있다. 화포정은 현재 관리인이 없어 건물이 붕괴 직전에 있다. 마당과 담장 일대에는 대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밖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의의와 평가]
영천 지역의 정자와 주택 등에서 보여 지는 특색이 화포정에도 적용된 듯 하다. 건물 전면을 개방하지 않고 창호로 막은 폐쇄형 건물이 특징이다. 건물 내·외부 곳곳에 많은 수장 공간과 쪽마루, 활주 등을 둔 것으로 보아 정자를 경영했던 인물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현재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안타까우며 관계기관의 협조를 구해 시급한 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