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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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遯竹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899년 - 돈죽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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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7년 - 돈죽정 기문 재 작성 |
현 소재지 | 돈죽정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
성격 | 누정 |
양식 | 장혀수장|홑처마|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김서영(金瑞映)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
[개설]
김서영의 본관은 김해. 호는 돈죽(遯竹)이다. 조선 시대 정조 때의 문인으로 성균관 생원이었으나 사후 가선대부(嘉善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후손들이 김서영을 추모하기 위해 구한말 돈죽정(遯竹亭)을 건립했다.
[위치]
돈죽정은 행정 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2리 상신마을에 있다. 신방리는 임고면소재지에서 영천댐 방면으로 가다 보면 댐 제당 직전에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노항리 다음에 있다. 신방1리 신천·골안·부전 마을을 차례로 지나면 골짜기 맨 끝에 상신마을이 나온다. 정자는 상신마을 초입 좌측 언덕에 있다.
[변천]
돈죽정은 구한말인 1899년(광무 3)에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지붕의 변형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건립 당시 기문이 있었으나 글자가 닳아 후손들이 1927년 새 기문을 작성했다.
[형태]
돈죽정은 영천댐 하부 첫 골짜기 가장 안쪽에 있는 신방리 상신마을 초입의 민가 사이에 서향해 자리하고 있다. 가로로 기다란 타원형의 대지 중앙부에 ‘一’자형의 정자가 독립 배치하고 주위는 토석 담장을 둘렀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우측에 대청 마루방 한 칸을 두고 좌측에 두 칸 온돌방을 들인 편당형의 평면이다. 건물의 정면·배면·우측면에는 쪽마루를 두어 동선에 편의를 제공했다. 창호는 대청과 온돌방 대부분 쌍여닫이 세 살 창호를 두었고 온돌방 배면에만 외여닫이 세살창을 두었다.
건물 전체에 네모기둥을 썼고 주 상부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장혀 수장으로 해 삼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처리하고 한식 기와를 이엇다.
[현황]
돈죽정은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지붕이 곧 붕괴 직전에 있다. 임시방책으로 추녀 끝에 활주를 대고 처마 끝에도 보강 지지대를 세워 두었다. 1927년에 경주인 김형진(金亨鎭)이 찬(撰)해 새로 쓴 돈죽정 기문이 남아 있다. 한편 같은 마을에 운산정(雲山亭)의 기문도 1927년 김형진이 찬했다.
돈죽정에 대한 문헌은 『문화유적분포지도(文化遺蹟分布地圖)』, 『영천의 누정(樓亭)』, 『영천시 비지정 건조물 문화재』 등이 있다. 하지만 『영천시 비지정 건조물 문화재』에는 돈(遯)이 돈(敦)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고, 『영천의 누정』에서는 전경 사진이 자양면 신방리 추원당 전경으로 바뀌어 있다.
[의의와 평가]
돈죽정은 영천 지역에서 가장 오지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 관계로 대청을 마루방으로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