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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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新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 17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조선 후기[1592~1807] - 일신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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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08년 - 일신정 중수[1808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60년 - 일신정 중수[1860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5년 - 일신정 중건 |
현 소재지 | 일신정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 173번지 |
성격 | 누정 |
양식 | 홑처마|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에 임진왜란 때의 공신 최분화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경주 최씨(慶州崔氏) 후손 오담(梧潭) 최분화(崔汾華)는 임진왜란 때 가산을 바쳐 구국운동을 한 공으로 군자감정에 추증되었다. 최분화의 후손 우헌(寓軒) 최막라(崔莫羅)는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증직되었다.
[위치]
일신정(日新亭)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에 있다. 영천 시내에서 포항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을 따라 가면 시티재[경주시 안강면과 영천시 고경면 사이의 고개]로 오르기 직전 좌측으로 석계리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끝까지 들어가면 오룡리가 나온다. 일신정은 오룡2리 큰오배마을에 있다. 이 마을은 영천에서 가장 험한 오지마을로 알려져 있는데 사면으로 천장산·삼성산·자옥산·도덕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변천]
일신정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오담 최분화를 추모하기 우해 후손들이 건립했다고 한다. 하지만 1940년 이태일(李泰一)이 쓴 『일신정중건기(日新亭重建記)』에 따르면 일신정은 우헌 최막라의 산정(山亭)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1808년에 후손 최두순(崔斗淳)·최달관(崔達觀)이 일신정을 중수했다고 하며, 그 뒤 1860년 최두순의 손자 최진관(崔進觀)·최인관(崔仁觀)이 문중과 협의해 중수 또는 중건했다. 그리고 1940년경 후손들이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17년에 작성된 『영양지(永陽誌)』에도 일신정은 최막라의 강학소로 기록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형태]
일신정은 방형의 와적 토담을 두르고 중앙에 ‘一’자형의 정자를 서향으로 독립 배치했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드린 뒤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이다. 진입은 정면 진입이고, 창호는 좌측 청방 칸에 쌍여닫이문을 달아 출입케 했고 대청 뒤로는 판벽에 쌍여닫이 판문[당판문]을 두었다.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고 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창을 달았다. 양 퇴칸 벽에는 외여닫이 판창을 두었다. 구조는 퇴 칸에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워 오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이엇다.
[현황]
일신정은 주변이 잘 정돈된 상태로 정자 또한 관리 상태가 양호하다. 일신정이란 당호에 어울릴 만큼 집을 새롭게 단장하고 수리하는 등 선대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신정은 건립 당시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건립 후 네 번의 중수 및 중건을 거친 것으로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건물에 스며들어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