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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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塢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 8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700년대 초 - 죽오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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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3년 - 죽오정 중건 |
현 소재지 | 죽오정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 |
원소재지 | 죽오정 - 경상북도 영천시 방산 상부 |
성격 | 누정 |
양식 | 소로수장|홑처마|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에 있는 성하구(成夏耈)의 장수지소(藏修之所).
[개설]
성하구[1669~1740]는 조선 숙종 때 학자로 본관은 창녕. 자는 방언(邦言), 호는 죽오(竹塢)이다. 성하구는 창녕 성씨 영천 입향조인 성영준(成永俊)의 6세손이며,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문인으로 전심으로 성리학을 닦고 고명한 학문과 지극한 행실로 세상의 추앙을 받았다. 죽오정(竹塢亭)에서 병와 이형상과 유촌(柳村) 성환(成瑍), 설파(雪坡) 손성악(孫星岳) 등이 지은 시에 서문을 달았다.
[위치]
죽오정이 위치한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는 창녕 성씨가 세거하고 있는 집성촌으로 채약산[해발 498.5m]의 남쪽 끝자락에 있다. 죽오정 남쪽으로는 대창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뒤로는 채약산이 둘러져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형의 입지로 남향해 자리 잡고 있다.
신광리를 지나 운천리로 가다 보면 좌측으로 오길 1·2리로 진입하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들어서면 우측의 휴양림을 지나 민가 사이에 죽오정이 있다. 안쪽으로 숨어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변천]
죽오정은 성하구가 늘그막에 공부를 하기 위해 건립하여 병와 선생 등 문인들과 지내던 곳이다. 여강(驪江) 이중구(李中久)[1850~?]가 지은 『죽오정중건기(竹塢亭重建記)』를 살펴보면 성하구가 생전에 방산(坊山) 위쪽에 건립 한 후[1700년대 초] 약 80년 정도 건물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없어진 것을 후손들이 힘을 모아 1923년 다른 곳에 중건했다.
하지만 옛 터와 너무 멀다는 이유로 건물을 완공하지 못하고 또 다시 옛 터와 가까운 약산(藥山)[채약산(採藥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임] 남쪽에 옮겨 정자를 완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건 시 한식 기와와 일식 기와의 지붕이었던 것을 최근[2008년 이후]에 플라스틱 기와로 번와하고 전면에 미서기 유리창으로 막는가 하면 기단을 시멘트로 덧마감했다.
[형태]
죽오정은 평평한 대지에 문간채와 정자 건물을 ‘ㄱ’자형으로 배치하고 정자 건물을 남향으로 앉혔다. 주위는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둘렀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일부를 시멘트 블록 담장으로 고쳤다.
대지의 동쪽 담 남쪽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간채로 진입하는데 도로에서 또 다른 대문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정자의 평면 형식은 ‘一’자형이고 정면 3칸, 측면 1.5칸이며 좌측 한 칸을 대청으로 하고 우측 두 칸을 온돌방으로 구성한 편당형이다.
우측 방 전면 상부에는 특별히 ’양정재(養正齋)‘라는 현판을 달았다. 출입은 전면에 디딤목과 보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청과 툇마루로 바로 오르는 구조이나 최근[2008년 이후]에 전면 주칸에 미서기 유리문을 달아 폐쇄시켰다.
온돌방은 방과 방 사이는 네짝 미서기 문을 달았던 흔적[상하문지방]이 남아 있다. 온돌방 전면으로는 반 칸의 퇴를 두었고 온돌방 뒤로는 좌측 칸에 벽장, 우측 칸에 쪽마루를 두었다. 좌측 온돌방 벽장은 상하를 나누었는데 상부에 쌍여닫이, 하부에 네짝 미서기 문을 달았다.
창호는 대청의 후면과 측면 그리고 퇴 칸의 측면에 쌍여닫이 당판창을 달았고 방의 전면에는 각각 쌍여닫이 세살창 내부에 미닫이창과 두껍닫이가 있는 겹창으로 설치했다. 한편 우측 방의 후면에는 쪽마루로 통하는 외여닫이 세살창을 두어 동선의 편의성을 도모했다. 청방 간에는 맹장지의 사분합 들문을 설치했는데 가운데 미관을 고려해 팔각형의 불발기를 표현했다. 마루는 모두 우물마루로 처리했다.
구조는 장혀수장의 단출한 3량 가로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에 플라스틱 개량 기와를 이엇다. 기단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했다. 주춧돌은 전면에 원형의 전병 주초로 하고 나머지는 덤벙 주초[자연석 주초]를 이용했다.
기둥은 전면과 대청 측면에만 두리기둥[원형 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방형 기둥]을 이용했다. 주 상부는 주두, 보아지, 대들보로 짜여 있다. 청방 간 상부의 대들보 위는 간소한 파련형의 판대공을 앉혀 종도리를 받고 있다. 또 종도리에서 측면으로 충량을 앉히고 추녀를 걸었으며, 모서리의 서까래는 추녀에서 마족연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평지붕 형식으로 어칸에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아 출입케 했다. 양협 칸은 방을 두었는데 마당 쪽에서 출입하도록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문간채 우측에는 변소 칸이 마련되어 있다.
[현황]
죽오정은 도로에서 철 대문을 통해야만 문간채로 진입이 가능하지만 평상시에는 철 대문이 잠겨 있다. 지붕 재료가 방수 등의 문제로 변형되고 기단이 시멘트로 마감된 점, 전면에 유리 미서기 창을 부설한 점 등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정자도 변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현판과 중건기 등의 편액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죽오정은 20세기 초에 중건한 건물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약간 변형되었지만 전통적인 수법이 잘 남아 있는 건축물로 평가된다. 대청과 툇마루의 높이를 낮춘 것은 누구든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여 성하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방의 벽장 하부 문을 미서기로 처리한 점은 생활의 불편함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관리 주체의 변화를 통해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