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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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池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전민욱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49년 - 지달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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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21년 3월 9일 - 지달기 사망 |
본관 | 충주 - 충청북도 충주시 |
입향지 | 충주 지씨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
세거|집성지 | 충주 지씨 - 경상북도 영천 일원 |
세거|집성지 | 충주 지씨 - 경기도 양주군 일원 |
세거|집성지 | 충주 지씨 - 강원도 홍천군 일원 |
세거|집성지 | 충주 지씨 - 충청북도 괴산군 일원 |
세거|집성지 | 충주 지씨 - 충청남도 부여군 |
세거|집성지 | 충주 지씨 - 충청남도 아산시 일원 |
세거|집성지 | 충주 지씨 - 전라남도 완도군 일원 |
성씨 시조 | 지경 |
입향 시조 | 지달기 |
[정의]
지경(池鏡)을 시조로 하고 지달기(池達沂)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충주 지씨(忠州池氏)는 중국 송나라 태학사로 고려 광종(光宗) 때 사신으로 들어와 귀화하여 벼슬이 금자광록대부태보평장사(金紫光祿大夫太保平章事)에 이르고 선의(善懿)라는 시호를 받은 지경을 시조로 하고, 5세(世) 지종해(池宗海)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충주(忠州)에 이거하여 충원백(忠原伯)에 봉해짐으로서 본관을 삼았다.
고려 말, 지용기(池湧奇)는 벽상삼한삼중대광판삼사사문하시중평장사(壁上三韓三重大匡判三司事門下侍中平章事)로 충원부원군(忠原府院君)에 봉해지고, 정몽주(鄭夢周)와 더불어 도의지교(道義之交)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충청안무사(忠淸按撫使) 지유용(池有容)과 곽산군수(郭山郡守) 지계강(池繼江)이 있다.
충주 지씨로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 지세함(指世涵)의 아들 지달기이다.
[입향 경위]
지달기가 영천으로 입향한 시기와 동기는 불분명하다. 다만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인해 세조(世祖)가 등극하자 세태에 염증을 느끼고 은둔하고자 서울에서 먼 곳인 영천을 택하고, 그 중에서 오지인 자양(紫陽)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입향 이후 인물을 향지 『영양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세종(世宗) 때 진사(進士)로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된 지한근(池漢根), 경상우감사(慶尙右監司) 지언방(池彦邦), 입향조 지달기(池達沂), 부사(府使) 지수홍(池守弘), 임진왜란 때 창의한 지득곤(池得坤)과 지언평(池彦平), 현감(縣監) 지연(池淵), 진사(進士) 지달용(池達龍),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지성희(池聖希), 증(贈) 좌승지(左承旨) 지수범(池守範), 고종(高宗) 때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지만석(池萬碩), 학행으로 이름난 지덕붕(池德鵬)과 지택신(池宅臣) 등이 있다.
충주 지씨는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지만 집성촌을 이루어 사는 곳은 경기도 양주군 일원, 강원도 홍천군 일원, 충청북도 괴산군 일원, 충청남도 부여군 및 아산시 일원, 전라남도 완도군 일원이다. 영천에는 영천댐 건설로 인해 자양(紫陽)이 거의 수몰되자 인근 도시로 이주하고 남은 60여 호가 영천 일원에서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