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0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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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致鼎 |
이칭/별칭 | 자중(子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순홍 |
출생 시기/일시 | 1654년 1월 12일 - 신치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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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3년 - 신치정 무과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98년 11월 11일 - 신치정 사망 |
묘소|단소 | 신치정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석계리 |
성격 | 무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산 |
대표 관직 | 용양위부사과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개설]
영산 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仁宗)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辛鏡)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으며, 8세(世) 전교령(典校令) 신지화(辛至和)의 아들 대에서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지낸 신천(辛蕆)을 파조로 하는 덕재공파(德齋公派)와 좌찬성(左贊成)을 지내고 영산부원군(靈山府院君)에 봉해진 신혁(辛革)을 파조로 하는 초당공파(草堂公派) 등으로 분파(分派)되었다.
[가계]
경상북도 영천에 세거하는 영산 신씨는 초당공파 후손이며, 종사랑참봉(從仕郞參奉) 신언륜(辛彦倫)이 영천 입향조이니 신치정(辛致鼎)의 5대조이다.
신치정(辛致鼎)의 자는 자중(子重)이며, 1654년(효종 5) 1월 12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장사랑(將仕郞) 신진(辛軫)이며, 증조는 신응주(辛應周), 조부는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 신택룡(辛澤龍)이다. 아버지는 사복장(司僕將) 신익우(辛益祐)이며, 어머니는 진주 하씨(晋州河氏)로 하달해(河達海)의 딸이다.
부인은 영천 이씨(永川李氏)로 찰방(察訪) 이유환(李惟煥)의 딸이며, 슬하에 4남1녀를 두니 아들은 무공랑(務功郞) 신봉규(辛鳳奎)와 신한규(辛漢奎)·신송규(辛宋奎)·신영규(辛齡奎)이며, 사위는 밀양인(密陽人) 박철(朴哲)이다.
[활동 사항]
신치정은 1673년(현종 14)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냈으며, 1698년(숙종 24) 11월 11일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신치정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석계리 흑석촌(黑石村) 안산 동록에 손좌(巽坐) 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