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0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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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時昌 |
이칭/별칭 | 덕순(德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634년 8월 28일 - 정시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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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1년 - 정시창 무과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80년 4월 19일 - 정시창 사망 |
묘소|단소 | 정시창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 |
성격 | 무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일 |
대표 관직 |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정시창(鄭時昌)의 본관은 영일. 자는 덕순(德順)이며, 1634년(인조 12) 8월 28일에 태어나 1680년(숙종 6) 4월 19일에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 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고조는 창릉 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이며, 증조는 병조 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 조부는 어모 장군(禦侮將軍)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 정안번(鄭安藩)이다.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정호문(鄭好問)이며, 어머니는 영천 윤씨(永川尹氏)로 주부(主簿) 윤승선(尹承善)의 딸이다.
첫째 부인 경주 정씨(慶州鄭氏)는 정창윤(鄭昌胤)의 딸로, 슬하에 1남을 두니 선교랑(宣敎郞) 정석후(鄭碩後)이다. 둘째 부인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진사(進士) 홍경증(洪慶增)의 딸로, 슬하에 1남을 두니 통덕랑(通德郞) 정석박(鄭碩博)이다.
[활동 사항]
정시창은 풍채가 뛰어나고 기국이 왕성하여 음성이 큰 종소리 같았다. 백부 정호인(鄭好仁)에게 수학하여 경전을 섭렵하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함에 힘썼다.
1671년(현종 12)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가 되었으나, 태평시대에 공로도 없이 벼슬길에 앉아 구차하게 녹봉을 받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하며 곧 물러나 여러 군자들과 더불어 학문 연마에 힘썼다.
[묘소]
정시창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淸通面) 보성리(甫城里)의 견월령(見月嶺)에 자좌(子坐) 향으로 있으며 권상규(權相圭)의 갈문(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