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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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宗岳 |
이칭/별칭 | 경앙(景仰),구암(龜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종식 |
출생 시기/일시 | 1566년 3월 7일 - 조종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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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조종악 의병에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633년 10월 3일 - 조종악 사망 |
묘소 | 조종악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
관련 유적 | 구암정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성천리 |
성격 | 충신 |
성별 | 남 |
본관 | 한양 |
대표 경력 |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 |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가계]
조종악(趙宗岳)은 한양 조씨(漢陽趙氏)로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며, 영천으로 입향한 정릉 참봉(定陵參奉) 조문림(趙文琳)이 고조이다. 증조는 충순위(忠順衛) 조임(趙恁)이고, 조부는 참봉 조원서(趙元緖)이며, 아버지는 예조 정랑(禮曹正郞)으로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된 조침(趙忱)이다. 어머니는 수원 김씨(水原金氏)로 의릉 참봉(義陵參奉) 김백윤(金伯胤)의 딸이다.
조종악의 자는 경앙(景仰), 호는 구암(龜巖)이며, 1566년(명종 21) 3월 7일에 태어나 1633년(인조 11) 10월 3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부림 홍씨(缶林洪氏)로 습독(習讀) 홍대원(洪大源)의 딸이다.
슬하에 2남 4녀를 두니 아들은 동추(同樞) 조홍훈(趙弘勳)과 증(贈) 통정(通政) 조여훈(趙汝勳)이며, 사위는 호군(護軍) 오천인(烏川人) 정헌도(鄭憲道)와 시독(侍讀) 월성인(月城人) 이우계(李友桂), 서산인(瑞山人) 류현(柳現), 군수(郡守) 청도인(淸道人) 김시명(金是鳴)이다.
[활동 사항]
조종악(趙宗岳)은 인품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일찍이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모에게 “우리 집이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아 왔으니, 어지러운 난국을 당하여 편히 있을 수 없습니다”고 말하니, 노모는 “장하다”며 허락을 하였다.
조종악은 아우 조종대(趙宗岱)에게 노모를 부탁하고, 본군 의병진으로 가서 군무에 참여하여 적을 크게 무찔렀다. 의병장 권응수(權應銖)는 조종악의 지략과 용맹을 장하게 여겨 따로 청송진(靑松陣)으로 보내어 군사를 일으키게 하였고 이로 인해 청송 지방이 병난(兵難)을 입지 않았다.
후일 조정에서 공훈을 기려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를 제수하고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기록하였다.
[묘소]
조종악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기룡산(騎龍山)에 있으며, 이태일(李泰一)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성천리에 후손이 공을 추모하여 세운 구암정(龜巖亭)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