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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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應泗 |
이칭/별칭 | 효원(孝源),유정(柳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종식 |
출생 시기/일시 | 1520년 5월 - 최응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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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최응사 의병을 일으킴 |
몰년 시기/일시 | 1612년 1월 - 최응사 사망 |
묘소 | 최응사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서산동 |
사당|배향지 | 서운재 - 경상북도 영천시 서산동 묘소 아래 |
관련 유적 | 유정 - 경상북도 영천시 서산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천 |
대표 경력 | 이조참판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이자 의병장.
[가계]
최응사(崔應泗)는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효원(孝源), 호는 유정(柳亭)이며, 1520년(중종 15) 5월에 태어나 1612년(광해군 4) 1월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통덕랑(通德郞) 최억년(崔億年)이며, 증조는 충순위(忠順衛) 최윤정(崔潤汀), 조부는 별시위(別侍衛) 최효분(崔孝汾)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로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된 최호(崔浩)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언양 김씨(彦陽金氏)로 현감(縣監) 김숭호(金崇滈)의 딸이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동래 정씨(東萊鄭氏)로 충의위(忠義衛) 정세후(鄭世侯)의 딸이며, 슬하에 4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최세남(崔世南)과 진사(進士) 최주남(崔柱南), 병조 참판(兵曹參判) 최벽남(崔擘南), 별좌(別坐) 최정남(崔挺南)이며, 사위는 생원(生員) 김엽(金曄)이다.
[활동 사항]
최응사는 어려서부터 양친의 병환에 정성을 다해 시탕(侍湯)하고, 스승에게는 공경을 다하였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고 훈도(訓導)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노구로 의병을 모집하여 아들 최벽남(崔擘南)과 조카 최기남(崔起南) 등에게 맡겨 영천성(永川城) 회복에 큰 힘을 보탰다. 후에 아들의 공훈으로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제수되었다.
[묘소]
최응사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서산동 서운산에 있으며, 이만규(李晩煃)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古鏡面) 전사리(前沙里)의 후손들이 추모하여 세운 유정(柳亭)과 묘소 아래 묘재인 서운재(瑞雲齋)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