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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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常服 |
이칭/별칭 | 평상복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입는 옷.
[개설]
평상복 혹은 일상복은 일상생활 속에서 남녀노소가 착용하는 복식으로서,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계절에 맞게 여름옷은 모시나 삼베를 이용하되 홑으로 하고, 겨울에는 명주나 무명을 겹이나 솜옷으로 하였다. 여름에는 대나무로 만든 손토수를 이용하여 더위를 이겨내고, 겨울에는 솜이나 털로 만든 손토수를 끼고 머리·귀·얼굴에 방한 용구를 썼다.
[변천]
1895년 의제 개혁의 일환으로 실시된 단발령(斷髮令)은 한국의 의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기혼 남자들이 망건에 탕건·정자관·갓을 쓰다가 단발령 이후는 서양식 모자를 쓰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하의 복식 변화에서 특징적인 것 중의 하나는 여성이 ‘몸빼’를 입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여성 인력 동원을 목적으로 간편한 복장을 요구함에 따른 것이다.
서양의 기성복이 한국 의생활에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이후 군복을 수선하여 입거나 군복에 염색을 하여 입으면서부터 서양식 바지와 셔츠가 일상복이 되었다. 그리고 1960~70년대 산업화를 통해 화학 섬유가 발달됨에 따라 대량으로 기성복이 생산, 소비되기 시작하였다.
1963년에 국내 합성 섬유로 ‘코오롱’과 ‘토프론’이라는 상품명으로 나일론 생산이 시작되어 천연 섬유의 단점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1966년에는 월남 파병을 계기로 여성들에게는 일명 ‘월남치마’라고 하는 긴 통치마가 유행한 적이 있고, 겨울에는 누비로 된 긴치마를 입기도 했는데, 시골이나 도시 어디서나 외출복 혹은 일상복으로 매우 각광을 받았다.
1970년대는 양장과 양복의 맞춤 시대이기도 했다. 반면, 양장이 완전하게 일상복으로 자리 잡고 한복은 일상복에서 퇴조하여 의례복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기성복의 구입이 증가하였고, 옷 구매 행태는 재래 시장 옷과 맞춤복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블루진의 전성 시대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지고, 본격적인 캐주얼 시대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 탈유행의 시대, 개성의 시대를 지나 21세기인 오늘날에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유행이 된 것처럼, 유행의 주기가 상당히 짧아짐과 동시에 기능성 옷이 발달하였다.
[현황]
현재 영천의 지역민들은 서양식의 기성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남녀노소에 따라 의류구매처가 구분될 수 있는데, 노인일수록 재래시장을 선호하며 중장년 의류는 브랜드 옷가게를 이용하며, 청소년과 어린이 의류는 대형 마트 혹은 인터넷을 통하여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2000년 이후부터는,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중장년층과 청소년 의류는 등산복과 같은 기능성 의류가 일상복을 대체할 때가 압도적이다. 영천시에도 대형 규모의 고가 전문 등산복 매장이 2010년 이후에 여러 개가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