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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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송첨재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6세기 말~17세기 초 - 송첨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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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3년 - 동산정 중건, 기문 작성 |
현 소재지 | 동산정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 |
성격 | 누정 |
양식 | 홑처마|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시대 학자 손우남(孫宇男)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손우남[1564~1623]의 본관은 일직, 초명(初名)은 손경남(孫慶男), 자는 덕보(德甫), 호는 윤암(綸庵)이다. 조선 전기 학자로 지산 조호익의 문인이었다. 한강 정구, 모당 손처눌, 낙재 서사원, 여헌 장현광 등과 교유했으며, 이희백 등과 함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임고 서원을 부래산에서 도일동으로 이건했고, 1620년 임고 서원 원장을 지냈다. 입암 서원(立巖書院)과 혜산 서원(惠山書院)에서 제향 되고 있으며, 저서로는 『윤암일집(綸庵逸集)』이 있다. 묘소는 영천시 자양면 용화리에 있다.
[위치]
동산정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 동산마을에 있다. 매호리는 영천 시내에서 임고면소재지에 있는 임고서원 직전에 위치한 마을이다. 구 갑을농공단지를 지나 600m 정도 가면 좌측으로 매호리 동산마을이 있다. 맞은편에 모원당[취운정]이 있다.
[변천]
동산정은 1950년대 초에 손우남이 태어난 동산마을에 후손들이 중건한 정자로 그 이전에는 송첨재(松簷齋)라는 정자가 1934년까지 있었다. 그 후 없어진 정자를 후손 손희영(孫羲永)이 영천과 경주에 살던 문중과 협의해 중건하고 1953년 안동인 권석찬(權錫瓚)이 기문을 작성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34년에 작성된 『익양지(益陽誌)』에 손우남의 강학지소로 송첨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산정은 손우남이 생전 강학을 위한 송첨재라는 정자를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건립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매호리 동산마을에 있는 동산정은 정면의 일각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정자가 ‘一’자형으로 독립 배치되어 있다. 평면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드린 다음 전면에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건물이다.
좌측 방 배면에는 벽장을 두고 대청과 우측 방 배면 및 측면에는 쪽마루를 두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다. 청방 간에는 쌍여닫이문을 달아 방으로 출입케 했고 대청 뒤로는 판벽에 쌍여닫이 판창을 내었다.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고 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창호를 두었다.
진입은 정자 우측면으로 올라 전면 퇴 칸으로 진입한다. 전면의 퇴 가장자리로는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고 그 아래를 누하 공간으로 두었다. 퇴칸 전면에만 두리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썼다. 주 상부는 간결한 소로 수장을 하고 오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모서리 서까래는 마족연으로 처리했다. 각 방의 배면으로는 함실아궁이가 나 있다. 처마 끝에 가첨[함석 우수홈통]을 달았다.
[현황]
동산정 정면 어칸 상부에는 ‘동산정(東山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기단은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고 지붕 처마 끝에는 함석 가첨을 달았다. 동산정 맞은편에는 모원당[취운정]이 있다.
[의의와 평가]
동산정 건물은 현대에 중건한 것으로 건립 당시 흔적은 찾을 수 없어 건축적 가치는 희박하지만 단편적인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지붕이 겹처마로 구성된 것과 허접한 쇠서는 현대에 건립된 전통 건축물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