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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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獨樂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593년 - 독락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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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00년대 - 독락당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7년 - 독락당 중창 |
현 소재지 | 독락당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
성격 | 누정 |
양식 | 겹처마|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이지백(李知白)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건물.
[개설]
이지백[1565~1637]의 본관은 벽진, 자는 계진(季眞), 호는 독락당(獨樂堂)으로,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였다. 1593년 자양면 노항리에서 자양면 용산리 원각마을로 처음으로 은거해 후학을 위해 전념했다. 임진왜란 후 승사랑과 내자시 봉사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위치]
독락당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원각마을에 있다. 자양면소재지를 지나 포항 죽장 방면으로 영천댐 둘레길을 따라 가면 작은 다리[원각교]를 지나 좌측으로 용산리 원각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계곡 동편에 용산정사와 원계재 사이에 독락당이 자리하고 있다.
[변천]
독락당은 이지백이 자양면 노항리에서 이곳 용산리 원각마을로 처음으로 이주해 강학을 위해 건립했다. 이지백은 1637년에 사망했으므로 독락당의 건립은 그 이전인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로 추정되는데 일설에는 1593년이라고 한다.
‘독락당’은 이지백의 호로 장현광이 당호의 편액을 명명했다고 한다. 이 후 세월이 지나 풍우로 인해 무너진 것을 1800년대[1877년 이전]에 중건했지만 또 다시 관리 소홀로 폐허로 남게 되었다. 후손들이 1977년 문중과 협의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독락당은 용산리 원각마을 개천 동편 완만한 경사지에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두르고 남서향하고 있다. 담장 정면에는 일각문을 통해 독락당으로 진입한다. 독락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드린 다음 전면에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 건물이다.
전면의 퇴 밖으로는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었고, 대청 배면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퇴칸 전면에는 두리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썼다. 대청 전면의 퇴 칸과 대청 사이에는 사분합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이용한다.
방의 전면에는 머름 위에 상 여닫이 세살창을 두었다. 기둥 상부는 연화문을 초각한 초익공으로 처리해 삼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다. 계자각 난간 하부는 중간 정도의 누하 공간을 마련했으며, 초석 위에 동자 석주를 세워 부식을 방지했다.
[현황]
독락당은 여헌 장현광이 지은 독락당 현판과 1977년에 지은 기문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독락당 건물은 최근에 중창한 것으로 건축적 가치는 희박하지만 건립 당시의 현판이 남아 있고 한 차례 중건 된 사실과 현재 중창한 것을 볼 때 시대적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