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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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洑碑-碑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781년 - 대재보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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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810년 - 대재보 비각 건립 |
현 소재지 | 대재보비 및 비각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 |
성격 | 비|비각 |
양식 | 홑처마|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보(洑)를 막은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
[개설]
대재보는 화북면 옥계리 비집걸마을 앞을 흐르는 고현천에 놓은 조선 시대 보로, 벼농사 등의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했다. 옥계리는 화북면소재지가 있는 자천리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비교적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 마을이다. 비각이 있는 비집걸마을은 바로 앞에 고현천이 북동~남서로 흘러 영천시 화룡동에서 신녕천에 유입된다. 마을 남서쪽에는 대재들이 고현천변에 펼쳐져 있는데, 이 대재들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재보가 필요하다.
[위치]
대재보비 및 비각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 비집걸마을 내 민가 앞 과수원에 있다. 자천리 면소재지에서 청송 방면 35번 국도를 타고 가면 횡계리[보현산 천문대]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비각이 있는 곳은 이 삼거리 250m 전이다.
[변천]
대재보비는 옥계리 비집걸마을 대재들에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동민이 합심해 보를 건설하고 1781년 이를 기념하여 세웠고, 비각은 비를 세우고 30년이 흐른 1810년에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대재보 비각은 단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건물로 내부에 비가 있다. 비각 전면에는 현판 등이 걸려 있지 않고, 내부 후면 상부에 비각을 세운 기문이 걸려 있다.
토석으로 기단을 조성하고 방형의 기둥을 세운 다음 장혀수장으로 비각을 완성했다. 어떠한 장식도 꾸미지 않았는데 간결하면서 고풍이 느껴진다. 벽은 좌우측면과 배면에 하부를 토벽으로 두텁게 처리하고, 그 위를 홍살벽으로 처리했다.
두터운 하부의 토벽은 아래 부분이 넓고 위로 갈수록 좁은데 마치 비각 둘레에 담장과 벽체를 일체시킨 듯하다. 전면의 벽은 하부에 문, 상부에 홍살로 처리했다. 기둥 등에는 겉에만 청색 계열의 색칠을 했고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지 않았다.
비각 내부의 비는 비좌 없이 자연석을 세우고 그 면에 비의 형태를 새긴 마애비 형태이다. 비는 하부에 연꽃을 조각해 비좌로 삼고 상부에 비갓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비신에는 상부에 가로로 ‘제보성공영세불망비(堤洑成功永世不忘碑)’라는 비명을 새기고 하부에 세로로 10열의 글씨를 한자로 새겼다.
비몸의 좌측으로 벗어나 ‘건륭사십육년신축윤삼월일립(乾隆四十六年辛丑閏三月日立)’이라는 건비년대(建碑年代)를 새겨 1781년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비각 내부의 후면 상부에는 비각을 세운 기문이 걸려 있다.
[현황]
대재보 비각은 세월이 오래되고, 관리 소홀로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 주변이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환풍과 습기에 대해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다. 또 주변의 민가에서 농기구 등을 놓아두는 등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재보비 및 비각은 영천 지역의 다른 비[선정비, 효자 열녀비]에 비해 그 형태가 독특하다. 건비년대(建碑年代)가 18세기이지만 고풍스런 멋이 비각과 함께 느껴진다. 비각은 하루빨리 정비가 되어 본래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