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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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관심리 지명과 관련한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 이전에 관심(觀心)과 관심(官心)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후기 기록부터는 모두 관심(官心)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신라시대에 행정 관청이 이 마을에 많이 있어 ‘관의 중심지’였으므로 관심이라 불렀다 한다. 원래 일선주에 속한 지역으로 757년(경덕왕 16) 일선주가 숭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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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순충공 김선궁의 후손이며, 손자는 김은유이다. 선산김씨 정조공파의 파조이다. 1383년(우왕 9) 지주가 이득진이 선산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할 때, 김연은 관리의 책임자로서 백성들을 금오산에 피신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문서와 서적을 동굴에 감추어 하나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하는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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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선산읍성 동문 밖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동내방(東內坊)에 속하는 읍성 동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동부리라 하였다. 본래 서내방(西內坊)에 속한 사촌(司村)이었다가 조선시대에 동내방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중심 지역에서 동쪽에 있다 하여 동부동으로 개칭하였다. 비봉산 자락이 남동쪽으로 점차 낮아지면서 국도 33호선을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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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고려시대 읍성 터. 비봉산 능선에는 성벽이 남아 있으나 평지에는 성벽의 흔적을 전혀 확인할 수 없어 비봉산성과 읍성의 관련성을 유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읍성조」에 따르면 “고려 후기에 이득진이 쌓았는데, 토축으로 둘레가 2,740자이고, 내부는 9천(泉) 3지(池)로 퇴락한 지 오래이며, 조선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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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행정구역. 조선시대 태종 때부터 불린 이름으로, 고을에 도적이 없고 인심이 좋아 살기 좋은 곳이므로 선산이라 하였다. 신라시대에 일선주·숭선군, 고려시대에 선주부, 조선시대에 일선현·선산군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동내방(東內坊)·독동방(禿同坊)·무래방(舞來坊)·서내방(西內坊)을 통합하여 선산면이 되었다. 1979년 5월 선산읍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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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왕골을 많이 재배하였다고 하여 골밭이라 하였다. 완전(莞田)은 골밭의 한자 표기이다. 조선시대 서내방(西內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사촌·골안·연봉리·연당을 병합하여 완전동이라 하고 선산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선산읍 완전동이 되었고, 1988년 동이 이(里)로 바뀌면서 선산읍 완전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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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지선주사를 역임한 문신. 이득진은 1383년(우왕 9)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재임 중 관심평(觀心坪)에서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고 읍성을 구축하여 방비하여 왜구의 침공이 없게 하였다. 선주읍민이 이득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화상(畵像)을 만들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