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선산. 자는 자량(子亮), 호는 욕담(浴潭). 할아버지는 문간공(文簡公)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이며, 아버지는 창의사(倡義士) 증이조판서 김종무(金宗武)이다. 김공은 12살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아버지 김종무(金宗武)가 경상북도 상주 북천전장에 의병을 일으켜 떠나게 되자,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금오산(金烏山) 도선굴(道詵窟)에 피난하였...
-
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도선굴 아래에 새겨진 글자. 조선시대 1592년(선조 25)에 경상좌도 함안 사근도역(沙斤道驛) 찰방(察訪)을 지낸 김종무(金宗武)의 막내아들인 욕담(浴潭) 김공(金羾)은 2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도선굴(道詵窟) 아래 움집을 짓고 은둔하였다. 조정에서 아버지 김종무의 공훈으로 벼슬에 제수해도 “벼슬하러 한양 가는 길은 상주 땅을 밟아야 하니...
-
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옆 암벽에 새겨진 글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중에 금오산 도선굴 아래 움막을 짓고 학문에만 전념하던 선산인(善山人) 김공(金羾)이 암벽에다 ‘욕담(浴潭)’이라고 새기고 자호(自號)를 욕담이라 했다고 한다. 남통동 욕담 암각은 금오산 대혜폭포에 아래 욕담이라 불리는 못[沼] 부근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통동 욕담 암각...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초기부터 아홉 개의 독립된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그중 한 마을이 이름 높은 선비들이 많이 나와서 문성동리(文星洞里)라고 하였다. 이를 자랑으로 여겨 1914년 마을을 통합하면서 마을 이름을 문성리로 통일하였다고 한다. 아홉 개 자연마을의 지명 유래는 다음과 같다. 문성(일명 들성, 평성)은 개미산이 들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성을 이룬 것...
-
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술(明述), 호는 와유당(臥遊堂)·소암(巢巖). 용암(龍巖) 박운(朴雲)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건재(健齋) 박수일(朴遂一)이며 어머니는 평양조씨(平壤趙氏) 인의(引儀) 조인복(趙仁復)의 딸이며, 장인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다. 박진경은 1596년(선조 29) 16세에 장인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곡리는 용소골, 배내[舟川], 못안, 구시골, 숭암, 가잠, 주평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용소골은 도리사 아래 마을로 마을에 있는 쌍둥이 못에 용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내는 병자호란 때 탄옹 김공이 인조를 호위하다 병을 얻어 요양하기 위해 이주하였다는 마을로, 풍수지리에 의하면 마을 형상이 배 모양이므로 붙여진 이름이...
-
경상북도 문화재 기념물 제132호이며 원호2리 웃골 도로변에 접해있다. 선산김씨 24세인 충신 김종무(金宗武)의 충절을 기린 정려각이다. 김종무는 문간공(文簡公)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의 장자로 1548년(명종3년)에 선산(들성)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손자 약암공(藥庵公) 유(濡)의 상소로 1675년(숙종 원년)에 정표가 내려 사림에서 건립되어 수차 중수하여 현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