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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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유금이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 구미시·선산군 편과 1999년 임재해의 『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에 수록되어 있다. 유금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에서 다수 채록되었는데,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채록된 것은 왕의 이름이 없다. 경상북도 경주 지역에서 채록된 것은 왕의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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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상북도 구미시가 관할하는 지역은 과거의 선산·해평·인동 지역이다. 따라서 구미시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는 선산(일명 일선)·해평·인동으로 나뉜다. 선산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 중에는 김종직을 배출한 일선김씨가 유명하고, 해평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 중에는 길재를 배출한 해평길씨가 유명하고, 인동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는 장현광을 배출한 인동장씨가 유명하다. 특히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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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선산김씨의 시조. 김추(金錘)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여덟 번째 아들로 경순왕과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장녀 낙랑공주(樂浪公主)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선군(一善君: 일선은 선산의 옛 이름)에 봉해졌으며, 그에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선산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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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고조부는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직계로 경순왕(敬順王)을 따라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여 공신이 된 김유렴(金庾廉)이며, 아버지는 김행공(金行恭)이다. 김한충(金漢忠, 1043~1120)은 문과에 급제한 뒤 1087년(선종 4) 합문인진사(閤門引進使)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어서 형부시랑·예부상서 등을 거쳐 추밀원사와 상서좌복야를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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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해평김씨의 시조. 김훤술(金萱述)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이 되었으며, 삼중대광보국문하시중(三重大匡輔國門下侍中)에 오르고 해평군(海平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에 따라 본관을 해평으로 하였다. 시호는 장렬(壯烈)이며, 후인들이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수호신으로 추앙하고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영응사(靈應祠)에 석상을 만들어 모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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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를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세거 성씨. 선산은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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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저를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세거 성씨. 선산은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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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지역의 세거 성씨.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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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일선(一善)은 선산의 옛 이름으로,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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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지역에 정착한 선산임씨의 시조. 임양저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손서(孫壻)로서 경순왕이 고려에 귀순하고자 했을 때 그 부당함을 극간(極諫)하다가 경순왕의 노여움을 사서 선산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선산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뿌리를 내림으로써 후손들이 임양저를 시조로 삼고 본관을 선산(善山)으로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