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0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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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也里 |
영어공식명칭 | Baegya-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백야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태정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백야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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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55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백야리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백야리로 개편 |
백야리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백야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34㎢ |
가구수 | 134가구 |
인구[남/여] | 235명[남자 117명|여자 118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백야마을은 백토가 많이 나서 ‘희재’, ‘희야재’ 또는 ‘백야치’, ‘백치’, ‘백야’라 하였다. 한편, 백토가 나고 마을의 형국이 ‘야(也)’ 자의 모습이어서 백야(白也)라는 지명이 생겼다고도 한다. 이는 해남읍과 삼산면에 걸치는 지역을 포함하는 신라 사라향(紗羅鄕)의 사라(紗羅)와 같은 어형(語形)을 보이는 지명으로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꿩이 많이 사는 곳이라 하여 ‘꿩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군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천리와 부흥리, 미리[구리], 온인리의 각 일부를 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백야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백야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백야마을, 오천마을, 부흥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오천마을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서는 현이면 오천리로 기록되어 있다. 최초 입향자는 여흥민씨 충정공파의 민봉세, 혹은 400여 년 전 입향한 안동권씨라고 전한다. 백야마을은 고려 말 선산김씨가 입향하여 촌락을 형성하고 거주하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조선 성종 때 영흥이씨가 들어와서 정착하여 정승을 배출하였으며, 약 250여 년 전 여흥민씨 민형현(閔亨顯)이 황산면에서 이주하였다고 전한다. 부흥마을은 이웃 마을인 안동리, 백야리, 오천리 등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고 하나 마을 형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대한제국 말기에도 부흥리라는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역사가 짧지는 않다고 추정한다.
[자연환경]
마을 평야 앞에 고수천이 흐르고 있다.
[현황]
백야리(白也里)는 북쪽으로 남천리, 동쪽으로 안동리, 남쪽으로 삼산면 봉학리, 삼산면 송정리, 삼산면 창리, 서쪽으로 남천리, 삼산면 봉학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2.34㎢이고, 백야리, 오천리, 부흥리의 3개 행정리에 134세대, 235명[남자 117명,여자 11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 생업은 농업이며, 주 산물은 쌀이다. 해남읍과 북평면을 통하는 국도 제13호선이 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비스듬히 관통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1992년 3월 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86호로 지정된 해남 민정기 가옥(海南閔正基家屋)이 있다. 백야마을 북서쪽으로 백야 지석묘군(白也支石墓群)[청동기시대]에 5기의 지석묘가 있고, 백야마을 북서쪽 낮은 산봉우리 산사면 말단부에 청동기시대 백야 유물산포지(白也遺物散布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