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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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赤川縣 |
영어공식명칭 | Jeokcheon-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적상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박노석 |
폐지 시기/일시 | 757년 - 적천현에서 단천현으로 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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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적천현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
관할 지역 | 적천현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
[정의]
백제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과 적상면 일대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현재의 무주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각기 영유하던 지역이다. 즉 적천현(赤川縣)[주계현(朱溪縣)]은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진 지역이고, 무산현(茂山縣)[무풍현(茂豊縣)]은 진한에서 신라로 이어진 지역이다. 적천현 지역은 본래 마한의 영역이었으나,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 때에 이 지역을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적천현으로 불렸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진례군조에 “진례군(進禮郡) [중략] 단천현(丹川縣)은 본래 백제 적천현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주계현이다”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주계현은 본래 백제의 적천현이었는데, 신라에서 단천현으로 고쳐서 진례군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주계현으로 고쳐서 진례현의 임내(任內)로 하였다가, 명종(明宗) 7년 정유[송나라 효종(孝宗) 순희(淳熙) 4년]에 무풍(茂豊)과 주계(朱溪)의 겸 감무(兼監務)를 두었고, 공양왕(恭讓王) 3년 신미에 두 현(縣)을 합하여 무풍 감무(茂豊監務)라 하였고, 본조 태종(太宗) 14년 갑오에 무주현으로 고쳤다”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주계현은 본래 백제의 적천현이었는데, 신라 때 단천현으로 고치어 진례군에 부속시켰다. 고려에 와서 주계로 고치고 계속 진례군에 딸려 있었는데, 명종 6년에 무풍 감무가 겸임하도록 하였다. 공양왕 3년에 무풍현에 병합하였고, 본조 태종 1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현감(縣監)을 삼고 주계를 치소(治所)로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 방면조에는 “부내(府內), 신동(身東) 동쪽으로 처음이 10리이고, 끝이 40리이다. 서면(西面) 처음이 5리이고, 끝이 10리이다. 북면(北面) 처음이 10리이고, 끝이 20리이다. 유야(柳野) 동남쪽으로 처음이 30리이고, 끝이 40리이다”라고 되어 있다.
[내용]
적천현의 영역은 조선 시대의 부내·신동·서면·북면·유야 일대로 추정된다. 지금의 무주군 무주읍, 적상면 일대에 해당한다.
[변천]
적천현은 본래 백제의 영역이었으나, 백제가 멸망한 후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757년 통일 신라 경덕왕 때에 단천현으로 이름이 바뀌고 진례군의 영현이 되었다. 이후 고려 시대에 주계현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계속해서 진례현의 임내로 있었다. 1177년(명종 7)에 무풍과 주계의 겸 감무를 두었다. 1391년(공양왕 3)[『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공양왕 3년 신미로 되어 있는데, 신미년은 공양왕 4년, 1392년이다]에 무풍 감무라고 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무풍과 주계를 합하여 무주현으로 고치고, 치소를 주계현이 있던 곳에 두었다.
[의의와 평가]
전통 시대 무주군의 행정 구역의 변천 과정을 알려 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