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14 |
---|---|
한자 | 金礪石神道碑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사전 마을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범호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45년 - 김여석 출생 |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493년 - 김여석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901년 3월 - 김여석 신도비 건립 |
현 소재지 | 김여석 신도비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사전 마을 |
원소재지 | 김여석 신도비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사전 마을 |
성격 | 신도비 |
양식 | 비갓 있는 석비 |
관련 인물 | 김여석(金礪石) |
재질 | 돌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64㎝[높이]|72㎝[너비]|29㎝[두께] |
소유자 | 광산 김씨 문중 |
관리자 | 광산 김씨 문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개항기 김여석의 신도비.
[개설]
김여석(金礪石)[1445~1493]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이 광산(光山), 자(字)는 은경(殷卿), 호는 심재(心齋)이다. 아버지는 강화 부사를 지낸 증판서(贈判書) 김수(金洙)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집의 권항(權恒)의 딸이다. 점필재(償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文人)으로 1465년(세조 11)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그해 가을 별시 문과에 2등 1인으로 급제하였다. 세조가 영재라 칭찬하며 동궁에게 장차 좋은 보필이 될 것이라 하였고, 또한 최항을 시켜 ‘무기욕(毋嗜欲) 무기음(毋嗜飮) 무교긍(毋驕矜)’ 아홉 자를 쓰게 하고 어새(御璽)를 눌러 하사하였다.
그 후 성균관 학유 겸 예문관 검열에 보임되었으며, 군자시 주부(軍資寺主簿)·병조 좌랑도 역임하였다. 1467년(세조 13) 일어난 이시애의 난에 영의정 조석문(曺錫文)과 함께 출전하여 공을 세워 정충 출기 포의 적개(精忠出氣布議敵愾)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1472년 병조 정랑이 된 뒤 의정부 검상·사인, 사헌부 집의를 거쳐 1479년(성종 11) 성균관 사예로 명나라가 건주위(建州衛)를 토벌하는 데 원수 윤필상(尹弼商)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여 군중 대소사를 임기웅변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오랑캐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하였다.
1481년 사간원 사간·사복시 정(司僕寺正)을 거쳐 승정원의 동부승지·우부승지·우승지·도승지와 이조 참의를 역임하였다. 그 뒤 경상도·강원도의 관찰사, 호조·병조의 참판,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으며, 예조 참판을 거쳐 1493년 형조 판서와 이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이어 광산 부원군(光山府院君)에 책봉되었다. 시호는 충목공(忠穆公)이고, 무주의 도산사(道山祠)에 배향되었다. 묘는 무주군 안성면 미륵암에 있고 안성면 사전리 마을 입구에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건립 경위]
김여석 신도비(金礪石神道碑)는 1901년 3월 송병선이 추기하고 14세손 김영규(金永圭)가 써서 건립하였다.
[위치]
안성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안성교를 건너 1㎞ 이동한 후 사전 마을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200m 정도 가면 좌측에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사전 마을이 나온다. 사전 마을 입구 비각 안에 김여석 신도비가 있다.
[형태]
귀부와 비갓이 있는 비석으로 크기는 높이 164㎝, 너비 72㎝, 두께 29㎝이다.
[금석문]
신도비의 원명은 ‘유명 조선국 정충 출기 포의 적개공신 자헌대부 행이조 판서 광산 부원군 시 충목공 김공 여석 신도비(有明朝鮮國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資憲大夫行吏曹判書光山府院君諡忠穆公金公礪石神道碑)’이다. 신도비는 1493년(성종 24) 10월에 숭정대부(崇政大夫) 행이조 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경연춘추관 성균관 사 오위 도총부 도총관(行吏曹判書兼弘文館大堤學藝文館大堤學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 부계(缶溪) 홍귀달(洪貴達)이 지었다.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간 겸 성균관 제주 시가원 찬선 경연관 서연관(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兼成均館祭酒侍講院贊善經筵官書筵官) 은진(恩津) 송병선(宋秉璿)이 추기하였고, 1901년 3월 14세손 조봉대부 서판임관 6등 행중학교 교관(朝奉大夫敍判任官六等行中學校敎官) 김영규가 썼다.
[현황]
겹처마 팔작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비각 안에 김여석 신도비와 김경조(金敬祖)의 유허비가 있다. 광산 김씨 문중이 관리한다.
[의의와 평가]
김여석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인물로 무주 지역의 대표적인 충신이라고 할 수 있다.